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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독도, 까맣게 몰랐던 역사의 되풀이 / 박찬수

등록 2008-08-04 21:50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워싱턴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05년 3월, 워싱턴 인근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찾았다. 그때도 한-일간에 독도 영유권이 이슈로 떠올랐던 때라, 미국 정부 문서에서 이와 관련한 기록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며칠 동안 산더미 같은 과거 문서들을 뒤졌지만 딱히 새로운 기삿거리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1945년 해방 직후부터 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 때까지 미 국무부 문서들을 읽으면서, 독도 문제를 다시 배울 기회는 됐다. 학계에선 상식에 속하지만, 국무부가 처음 만든 평화조약 초안들엔 독도가 한국령으로 분명히 표시됐다는 사실, 이게 49년 12월 작성된 초안부터 일본령으로 슬그머니 둔갑했다는 사실, 막상 51년 평화조약에선 독도가 한국령인지 일본령인지에 대한 언급이 아예 빠졌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됐다.

미국은 왜 1949년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을까.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주는 문서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두 개의 문건이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47년 일본 외무성이 미 국무부에 보낸 ‘일본 본토에 인접한 작은 섬들’이란 제목의 문건이었다. 이 문건은 독도가 역사적·지리적으로 일본령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이렇게 미국을 상대로 집요한 로비를 펼쳤던 것이다. 나중에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에게 물어보니, 당시 우리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에서 독도 문제가 논의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가 일본령으로 규정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더 의미심장한 건 1949년 12월 미 국무부 극동국이 작성한 ‘대일 평화회담에 한국의 참여 문제’란 제목의 문서였다. 샌프란시스코 회담에 한국이 참여하는 게 타당한지를 검토한 문건이었다. 회담에 우리도 당사자로 참여했다면 독도 문제는 그때 깨끗이 매듭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의 평화회담 참여가 부적절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유는 “한국이 (항일) 무력투쟁을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에 반하는 증거들이 더 강력하다. 1948년 (정부 수립) 이전엔 (어떤 기구도) 한국 국가나 정부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상해 임시정부를 한국의 법적 정부로 볼 수 없고, 임정의 항일투쟁도 극히 제한적이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1949년 무렵은 우리 정부가 갓 수립됐던 시기라 외교력에서 일본을 당해낼 수 없었다고 치자. 그러나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우리 정부는 여전히 미국 지명위원회의 독도 주권표기 변경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엔 우리보다 일본 학자들이 더 많이 찾아와 독도 관련 기록을 찾는다. 수많은 일본 재단들이 이들을 후원한다.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 곧바로 일본 학자들이 연락을 해오지만, 한국 정부로부턴 전화 한 통 없다고 우리 학자들은 말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광복절을 ‘건국 60주년’ 행사로 치른다. 1948년 이승만 정부 출범이 실체적으로 ‘국가 수립’이며, 상해 임시정부는 ‘정신적·상징적 의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란다. 미 국무부가 한국을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 당사국에서 제외했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상해 임시정부와 항일투쟁의 내용을 더 채우지는 못할망정, 우리 스스로 그 존재를 포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도는 우리 땅’이란 표지석만 세우는 게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역사는 기막히게 불운한 방향으로 자신을 되풀이하고 있다. 박찬수 논설위원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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