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충격적인 9·11 테러가 발생한 지 한 달쯤 뒤인 2001년 9월21일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테러 수사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연방수사국과 법무부 수사관들은 알카에다와 연결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이 입을 열지 않는 데 분노하고 있다. 일부 수사관들은 테러정보를 뽑아내기 위해선 이제 ‘전통적인 시민의 자유’는 던져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다. 당시 뉴욕의 브룩클린수감자센터엔 1천명이 넘는 아랍인들이 오직 알카에다와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장기간 구금됐고 가혹행위를 받았다. 연방수사국(FBI)엔 개인의 통화기록, 인터넷 사용기록, 도서관 대출기록, 은행계좌 내역 등을 법원 영장 없이도 받아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2975명의 무고한 시민이 숨졌는데 그깟 기본권을 좀 제약하면 어떤가, 중요한 건 테러의 재발을 막는 것이다 - 이런 생각을 담은 법안이 논란 끝에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법안의 이름은 절묘하게도 ‘애국법’(패트리어트법)이었다. 이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테러를 방조하는 반애국적 인사’로 내몰고 있다.
요즘 ‘최진실법’ 논란을 보면서 미국의 ‘애국법’이 떠오르는 건, 법을 추진하는 논리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댓글에 대한 법적 규제에 찬성하지 않으면 ‘최진실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최씨가 겪은 고통을 방조하는 무책임한 집단’으로 내몰린다. “최씨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도 사이버 악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직접 당해 봐야 안다”는 한나라당 대변인의 발언은 정확히 그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애국법에 반대하면 테러 방조자가 되듯이, 인터넷 법적 규제에 반대하면 졸지에 악플을 옹호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피해자에 감정이입을 하는 듯한 태도로 입법을 추진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범죄에 희생당한 사람들 가운데 범죄자를 용서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살인범을 다 사형장에 세우는 게 정의는 아니다.
인터넷 규제법안이 던져버릴 ‘시민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다. 악플인지 아닌지 누가 절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에 민감했을 여배우의 이름이 그걸 제한하는 법안 이름으로 사용되는 역설이 지금 벌어진다. ‘표현의 자유’란 양파껍질과도 같아서, 한번 제한하기 시작하면 나중엔 가장 기본적인 부분조차도 아주 쉽게 제약당할 수 있다. 숱한 논쟁 속에서도 미국 연방대법원이 표현의 자유만큼은 항상 최대치로 보호하려 애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4년 7월 인터넷 포르노를 규제하려는 ‘어린이온라인보호법안’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런 판결을 내렸다.“포르노의 해악은 뚜렷하고 규제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이트 강제폐쇄와 같은 방식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니 정부와 의회는 다른 방식의 규제방안을 찾아보라”고 권고했다.
인터넷 악성 댓글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법적 규제를 덧씌우기 전에,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단지 손쉽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을 아예 차단하고 그런 글을 올린 사람을 구속하자는 건, 용의자들을 고문해서라도 테러정보를 빼내야 한다는 연방수사국 수사관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그런 취급을 받은 용의자 가운데 다수가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그 중 일부는 지금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찬수 논설위원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