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백승종의역설
역사상 최대의 공공사업이라 할 팔만대장경 판각은 여러 모로 수수께끼다. 과연 불법을 통해 나라를 지키려 했는지 난 잘 모르겠다. 오랜 전란의 와중에서 초대형 사업이 어떻게 가능했을지도 알 수 없다. 설사 몽골과 고려의 전쟁이 간헐적인 소규모 전투뿐이었다 해도 군비조차 부족한 판에 막대한 물력을 들여 8만장의 경판을 새겼다니 납득이 안 된다.
팔만대장경은 자원의 보고인 남부지방을 장악하려고 벌인 장기 국책사업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최씨 무인정권은 강화에 경판당을 지어 놓고 이 사업을 지휘했다. 충청도 개태사의 수기 스님에게는 대장경의 교열을 맡겼다. 해인사를 비롯해 경상도내 주요 사찰은 판각을 담당하게 했는데, 총수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이었다. 전라도에도 어딘가 판각사업을 담당할 분사가 설치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대장경 사업은 남부지방 여러 곳에서 동시 진행되었다.
말하자면 펀드도 조성하고 통치력 강화를 위한 관계망도 구성하는 것이 이 사업이었다. 사업비용 일부는 지방의 유력자들에게서 추렴했다. 갹출된 자본은 대장경 사업뿐만 아니라, 무인정권의 통치자금으로 전용될 소지도 없지 않았다. 또한 이 사업은 시골 선비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무려 16년간의 대사업이었던 만큼 어쩌면 몽골에 부역했을지도 모를 회색 지식인들을 공공사업에 묶어둠으로써 정치적 안정에 기여했다. 결과적으로 농민과 승려를 비롯해 이 사업에 동원된 각계각층은 기진맥진한 고려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장경 사업은 외딴섬에 갇힌 고려 지배층이 국가의 자원을 장악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은 그렇게 탄생했다. 국가적 위기가 바로 명품의 산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는 시대에 뒤진 막가파식 토목공사로 경제위기를 돌파한다며 큰소리다. 물난리 하나도 막지 못할 천박한 사고다. 정말 비전이 하나도 없다.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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