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 역설] 농부 이경해

등록 2013-01-21 19:32

백승종 역사가
백승종 역사가
그는 시골에서 태어나 농고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산기슭을 일궈 목장을 만들었다. 세상을 먹여 살리는 ‘농사’야말로 가장 귀한 직업이라고 믿은 그였다. 농사를 잘 지어보려고 그는 친구들과 함께 농민단체도 만들었다. 첫새벽부터 달 뜨는 초저녁까지 그들은 땀 흘려 일했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산업화’ 귀신에게 넋을 빼앗긴 이 나라 권력자들은 농부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그 근본을 따져보면 다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체제가 문제였다. 지푸라기를 쥐는 심정으로 이경해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찾아갔다. 그는 한국 농민의 억울함을 호소하였지만 저들은 냉소하였다. 그의 처절한 심정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장을 서성이며 ‘조선 독립’을 절규하던 이준 열사와도 같았다. 대한민국 농부 이경해는 세계무역기구 제5차 각료회의장 바깥에서 분사하였다.(2003년 멕시코 칸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턱없이 값싼 수입농산물 가격을 따라잡을 수 없다.” 한국 농민의 경작지는(평균 1.3㏊) 미국의 100분의 1이다. 농축산물 수입 개방은 우리 농민들을 몰이꾼에 쫓기는 토끼 신세로 만들어버렸다. “나와 우리 친구들은 이를 피해 이 작목, 저 작목으로 틈새를 찾아다녔지만, 항상 그 틈새에서 도망친 다른 동료들을 만날 뿐이었다. (중략) 나는 하룻밤 새 정든 고향을 버리고 떠나버린 친구의 낡고 오래된 빈집을 돌아보며 그가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빚에 눌려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친구의 집으로 달려갔지만 친구 부인의 애달픈 울부짖음을 듣고도 아무 조치도 하지 못했다.”(이경해가 세계무역기구에 보낸 편지)

이경해를 죽음으로 내몬 농촌 현실은 아직도 계속된다. 아름다운 농촌이란 그저 허울일 뿐이다. 19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농촌을 파괴한 산업화세력은 흡혈귀나 마찬가지다. 이경해가 피를 토하며 말했듯, 저들의 산업주의는 온 세상 농업을 말살하고 인류를 파멸시키고야 말 것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찌할 셈인가?

백승종 역사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