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경희대 객원 교수
백승종의 역설
전횡이라는 낱말이 자꾸 떠오른다. 얼마 전에는 비위에 안 맞는 교사들을 무더기로 자르더니 이제 고위공무원들 차례가 된 모양이다. 호령 한마디면 산천초목도 벌벌 떤다는 권위주의가 바야흐로 부활 중인가.
임면권을 가지고 세상을 희롱한 권력자들이 조선시대에도 여럿 있었다. 중종·명종 때 남곤·심정·이기·윤원형 등이 그러했다. 어찌 보면 그들보다 더 심한 이가 김안로였다. 그는 심약한 중종을 구중궁궐 한쪽에 밀쳐놓고 공포정치를 했다. 제법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처럼 굴면서 세상을 속이려 들었다.
썩은 선비를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기묘사화 때 희생된 조광조 등을 복권시키겠다는 김안로의 주장을 듣고 선비들의 가슴은 뭉클했다. 그들의 성원에 힘입어 김안로는 요직을 차지했다. 하지만 조정의 인사권을 거머쥐자 본색을 드러냈다. 나라의 중대사를 제멋대로 처리하면서도 늘 공론을 핑계댔다. 그는 아부꾼들로만 조정을 가득 채웠다. 자신과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른 사람은 반드시 오명을 씌워 내몰았다. 이를테면 낙하산 인사와 보복 인사의 선구자였다. 언젠가 이조좌랑 홍섬은 취중에 사석에서 김안로를 비난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김안로는 즉시 홍섬을 잡아다 곤장을 마구 치며 역모로 옭아 넣으려 했다. 홍섬이 끝내 무죄를 주장하자 변방으로 귀양 보냈다. 홍섬의 아버지 홍언필도 조정 대신의 자리에서 쫓아냈다. 김안로는 정적을 무자비하게 살해했고, 심지어 문정왕후까지도 폐위시키려 했다. 온나라 사람들은 그가 두려워 숨을 죽였다.
김안로는 명분과 공론을 내세우는 데 탁월했다. 조정의 물갈이도 나라를 위해서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역사를 속이지는 못했다. 물갈이가 필요한 때도 있기야 하겠지만 속도와 국가관이 해임 사유라면 곤란하다. 권세란 생각보다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다. 전횡을 일삼던 김안로는 결국 사약을 마셨고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백승종 경희대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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