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백승종의 역설
말길이 막히면 안 된다. 힘의 우열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찬가지다. 거슬리는 말이라 해서 권력자가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윽박지르면 공동체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만 통하는 법칙이 아니다. 시공을 초월해 늘 똑같은 문제다.
1515년, 조광조는 중종에게 언로(言路)를 넓혀야 한다며 그 중요성을 설파했다. “언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언로가 열리면 나라가 다스려져 평안합니다. 하지만 언로가 막히면 정치가 어지러워져 끝내 나라는 망해 버립니다. 따라서 현명한 왕은 언로를 최대한 넓히려고 애씁니다. 재상부터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자기 생각을 있는 대로 다 말하게 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막상 제 뜻을 제대로 아뢸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간관(諫官)을 두어 언로를 맡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간혹 간관의 말이 도에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조차 왕은 마음을 비워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게 법도입니다. 왕다운 왕은 언로가 막힐까봐 늘 염려합니다.”
원칙적으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다. 이것이 조광조의 생각이었다. 다만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란 쉽지 않아 간관을 정해둔 것뿐이라고 했다. 그들 간관만이라도 언론 자유를 누린다면 나라는 평안하리라고 했다. 이러한 조광조의 신념은 오늘의 정치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옳다. 정부나 집권 여당의 정책은 결코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국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번 용산 참사로 70대 노령의 세입자가 불 타 숨졌다. 그의 아들 역시 현장에서 다쳐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아직 부친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은 아들이 철거민대책위원장이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붙잡아 갔다. 현정권은 가난한 시민들의 생존권 투쟁을 범법행위로 몰아붙인다. 주류 언론도 맞장구를 친다. 언론마저 언로를 막고 있는 셈이다.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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