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백승종의 역설
폐문자수(閉門自守)란 말이 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앉아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행위다. 요즘은 폐문자수의 자수를 자수(自修)로 더러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크게 보면 둘 다 비슷한 말이다. 물러서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나 자신의 내면을 닦는 것이나 오십보백보다. 하지만 자수는 역시 지킬 수 자를 써야 제격이다. 신념과 지조를 지키려고 애쓰는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아무래도 지킨다는 뜻이 명시되어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허다한 선비들이 폐문자수를 했다. 특히 권신이 세상을 희롱할 적이면 그런 선비들이 더욱 늘었다. 명종 때는 이황, 김인후, 조식, 이항, 기대승 같은 선비들이 사립문을 닫아걸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광해군 때도 그랬다. 권협 같은 이는 벼슬을 버리고 집안에 틀어박혀 결코 세상일을 논하지 않았다. 그는 나라에 공이 많은 신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서울을 사수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정유재란 때는 사신이 되어 명나라의 군대를 빌려왔다. 하지만 광해군이 즉위하자 권협은 조정을 떠나 초야에 몸을 감추었다. 내가 보기에 선비란 냇가의 물고기와 같다. 물이 독하고 흐리면 떠나고, 맑고 고우면 돌아오기 마련이다.
선비들의 폐문자수는 도피나 은둔 같으면서도 실은 그런 게 아니다. 최한기가 <명남루수록>에서 강조했듯이, 학식이 있고 도량이 넓으며 행실이 맑은 선비는 언제 어디에 있건 주변 사람들을 계몽한다. 그런 참된 선비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위에서 거명한 이황과 김인후와 조식 같은 선비들은 폐문자수를 통하여 조선의 문화를 살찌웠다. 최한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나라 형편이 엉망이다. 정부 여당의 전횡은 극에 달했다. 민주당의 우왕좌왕도 도를 넘었다. 사법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검찰의 편법수사에 이어 촛불재판 몰아주기까지 부끄러운 일뿐이다. 생각이 있다면 이쯤에서들 내려놓고 폐문자수했으면 한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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