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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역설] 면죄부

등록 2009-03-20 18:42수정 2009-03-20 18:52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의역설
서양 중세 말기의 일이었다. 가톨릭교회는 건축자금과 선교기금이 부족하자 면죄부를 발매했다. 15세기에 널리 유행한 면죄부는 낱장짜리 목판화 또는 동판화였다. 면죄부에는 예수의 초상과 기도문이 새겨져 있었다. 중세 교회는 죄가 있으면 우선 그 죄를 고백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죗값을 온전히 치르기란 어려운 일. 신자들은 기도를 하고 선행을 베풀거나 면죄부를 구입하여 죄의 용서를 빌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혹독한 고행을 감수했다. 면죄부는 이러한 고행을 대신해 등장했다. 부유한 신자들의 처지에서 볼 때 면죄부 제도는 편리했다. 16세기가 되자 교회는 면죄부를 남용하기 시작했다. 면죄부는 고위 성직자들이 신자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1517년께, 로마 교황청은 최악의 무리수를 두었다. 교황청은 당시 어느 누구보다 부유했건마는 성베드로 대성당의 재건축 기금을 마련한다는 얄팍한 구실을 내세워 면죄부를 대량 판매하려 들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특히 독일 비텐베르크의 성직자였던 마르틴 루터는 교황청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95개조 의견서>를 저술해 면죄부 제도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쳤다. 루터의 반격으로 결국 로마교회는 분열되고 말았다. 면죄부도 역사의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갔다.

인상적인 것은 <95개조 의견서>의 마지막 부분이다. 거기서 루터는 죄의 소멸은 면죄부 따위의 값싼 희생이 아니라, “더 많은 고난을 겪음으로써”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죄가 있으면 꼼수로 피하지 말고 얼른 매를 맞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유전무죄 강자무죄다.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 재벌가며 거짓말쟁이 정치가는 물론이고, 문제 많은 대법관에게도 신성한 법률의 이름을 빌려 무죄가 확정된다. 수백 년 전 교회가 내다 버린 면죄부가 우리 법정에서는 아직까지도 거래되는 셈이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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