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백승종의역설
역사상 시국선언이 봇물을 이룬 적이 몇 번 있다. 4·19 때 시작되어 유신 독재 시절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가 그 절정이었다. 각계각층은 권력의 횡포가 극에 달할 때마다 분연히 시국선언을 내놓았다. 이로써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하나로 수렴되었으니, 시국선언은 현대사가 이룬 빛나는 전통이다.
시민들 가운데는 6월 민주항쟁을 뚜렷이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때 집권세력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쥔 것만으로도 부족했던지 공권력을 앞세워 이 사회의 주인인 시민을 폭력으로 유린했다. 그러자 시민사회는 시국선언과 항의시위로 맞섰고, 결국은 독재자가 무릎을 꿇었다. 시국선언은 민주화를 선도했던 것이다.
특히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결정적인 고비마다 막힌 역사의 물꼬를 텄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던 전국대학교수단 시국선언은 독재자 이승만을 하야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6월 민주항쟁 때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결국 거국적인 시민항쟁을 이끌어냈다. 서명자 수가 적든 많든 그들의 시국선언은 파급력이 컸다. 양심과 지성의 소유자인 대학교수들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심각한 현실 문제를 공정하게 진단한 것이라 자연히 그런 것이다. 각계각층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공감하여 자기들 나름의 시국선언을 또 발표하는 것이 우리네 역사적 경험이다.
지난 십년 동안 대학 바깥은 비교적 민주적이었다. 그래서 대학교수들은 조용히 연구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이제 사태가 험악하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구호가 다시 등장했다. 비극적 사회현실이 재현되고 있다. 대학 강단도 조용할 수 없다. 엊그제부터 시국선언이란 태풍이 발생해, 사방으로 그 세력이 확장되는 중이다. 그래도 집권층은 태연하단다. 서명 교수의 수가 적다며 자위한다는 것이다. 도도한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그들은 알고나 있는 것일까. 역사적 경험을 무시한 정치는 결코 무사할 수 없다. 이것이 정의다.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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