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역설] 운하

등록 2009-07-03 19:46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흐르는 하천을 손질하든가 맨땅을 파내 배가 다닐 물길을 만들면 그게 운하다. 노동력이 대량 투입돼야 가능하다. 고대에는 왕권이 강한 나라에만 운하가 있었다. 가령 아시리아는 이미 기원전 7세기에 산과 암벽을 뚫고 운하를 팠다. 이집트의 왕 느고 2세도 나일 강과 홍해를 연결하는 운하 공사를 시작했다. 그 공사 기간이 수백년이나 되었지만 일단 운하가 완성되자, 무려 천년 동안 값진 몫을 했다.

고대 중국의 황제들도 앞다퉈 운하를 만들었다. 특히 서기 7세기에 완공된 대운하는 당대 최고의 규모였다.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이 운하는 총길이가 1700㎞나 되었다. 대운하를 따라 각지의 세금이며 물산이 수도로 집중되었다. 운하의 이용가치는 정치 및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높았다. 중세까지도 운하를 비롯한 각종 물길은 뭍길에 비해 비용과 시간 면에서 한층 유리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시대까지는 각종 물자가 대개는 물길을 통해 운반되었다.

서양도 사정은 비슷했다. 19세기 초까지도 운하 건설 사업이 활발했던 것이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18세기 후반부터 60년 동안 새 운하가 100개 이상 완공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운하는 사실상 끝났다. 철도 운송이 발달하자 운하는 경쟁력을 잃었다. 교통로를 결정적으로 단축하는 경우가 아닌 바에야 운하에 집착할 이유가 사라졌다. 운하는 육상교통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물동량도 제한되어 있다. 지난날 화물선이 북적대던 운하는 관광선만 한가히 오가는 추억의 장소일 뿐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몰랐던지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고집했다. 국민의 비판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당황한 정부는 대운하 사업 포기를 선언했으나, 그 대신 명분도 실리도 불분명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내밀고 있다. 예산이 22조원이나 된다는 사상 최대의 국책사업이다. 하지만 이 사업이 시행되면 수질은 더욱 나빠진단다. 세상에 이런 복마전(伏魔殿)이 또 있는가.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