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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도쿄에서] 부아소나드 타워와 중핵파 / 김도형

등록 2009-07-06 21:58수정 2009-09-14 15:50

김도형 특파원
김도형 특파원
교문 곳곳에는 대학 쪽이 고용한 경비원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출입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일일이 체크한다. 대학으로부터 퇴학·무기정학 등 중징계를 당한 ‘블랙리스트’ 학생들의 학내 출입을 막기 위해서다. 교내에 들어가자 건물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쉽게 눈에 띈다. 학내에 이런 감시카메라가 150개나 설치돼 있다고 한다. 게시판 곳곳에는 징계자와 징계사유 등을 담은 학교 쪽의 경고 공지사항이 수십장 붙어 있다. 지난달 24일 들여다본 일본 명문 사립대 호세이대학 이치가야 캠퍼스의 살벌한 풍경이다.

이 대학 캠퍼스의 상징적 건물인 초현대식 27층 ‘부아소나드 타워’의 화려한 외관에 가린 억압과 배제의 공기가 짙게 깔리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3월14일 대학당국이 학내에 정치적 내용을 담은 세움간판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운동권 학생 등 29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 가운데 호세이대 학생 5명이 퇴학 또는 무기정학 등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 학생들의 저항과 반발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력 투입, 주모자 체포, 학교당국의 중징계가 되풀이됐다.

지난달 8일 현재 110명이 경찰에 체포되고 30명이 기소됐다. 수십명의 학생들이 중징계를 당했다. 대학으로부터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학내 출입이 금지된 구로키 가즈야(23)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학교 쪽에서 2000년 이후 학생들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경찰과 손잡고 운동권 학생들을 배제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당국과 경찰 쪽의 강경대응은 애초 호세이대에서 세력이 강한 운동권 정파인 ‘중핵파’(정식 이름은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전국위원회)를 겨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학생들의 반발을 부르는 등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구로키는 말했다. 지난 4월24일 항의집회의 경우 1500명이 넘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오사카·히로시마 등지의 학생들까지 동참했다. 항의성명에 서명한 변호사들은 일주일도 안 돼 170명에 이르렀다. 중핵파는 1984년 도쿄 자민당 본부에 화염병을 던지는 등 ‘폭력혁명노선’을 줄곧 주창했지만 1990년대 이후는 비폭력 노동운동에 치중하고 있다.

학교 쪽의 입장을 듣기 위해 홍보과에 전화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학교 쪽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라는 안내문에서 “신조의 표현 행위에 대해서도 무제한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는 일반의 규범이 있다”며 도를 넘어선 행위에는 의연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2006년 4월 이후 세움간판 설치와 정치적 선전물 배포 등 정치적 표현 행위가 학내에서는 사실상 금지돼 있다는 게 학생들 주장이다. 일본 주요 언론들이 어찌된 일인지 호세이대 사태를 거의 보도하지 않는 것도 학교당국의 강경대응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도 올해 호세이대 학부모가 될 뻔했다. 아들이 입학시험을 치른 이 학교의 합격통지서를 지난 1월말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다른 사립대에 비해 10~20%가량 비싼 등록금·수업료 때문에 내심 걱정했다. 이후 다행히 학비가 싼 지방 국립대학에도 합격해 그 대학에 다니고 있다.

만약 아들이 그냥 호세이대에 들어갔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부아소나드 타워’의 위용을 자랑스러워했을까, 아니면 집회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대학 분위기에 숨막혀 했을까?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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