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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역설] 미디어법 유감

등록 2009-07-24 18:19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독일 시민들은 몇몇 언론기업이 시장을 멋대로 주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행한 과거 경험을 아직도 기억한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후겐베르크라는 언론기업인이 있었다. 독일의 신문시장을 석권한 그는 온갖 방법을 써서 극우파를 밀었다. 덕분에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해, 역사상 크나큰 오점을 남겼다.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는 현대 독일사회는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애써 노력한다. 그들은 언론기업의 조직과 회계 및 활동 전반을 철저하게 감시 규제한다. 결과적으로 언론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가령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일간지인 <빌트>만 해도 정치색이라곤 전무하다. 그저 연예 및 오락용 신문일 따름이다. 방송 산업에서도 시장의 독점은 절대 허락되지 않는다. 대규모 언론기업이 있다 해도, 그 시청률이나 정치적 영향력은 대수롭지 않다. 이는 독일 시민사회가 여론의 다양성을 지키려고 백방으로 힘쓴 결과다.

일단 대규모 언론기업이 등장하면, 그들의 시장독점을 막기가 어려워진다. 정치적인 부작용 또한 피할 수 없다. 일반 시민들은 그들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조작한 정보에 휩쓸려, 사태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연전에 이탈리아에서 언론기업가 베를루스코니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의 정치적 승리는 여론 조작의 결과였다. 이런 비판이 한때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얼마든지 일어날 법한 일이다.

그럼 지금 이 나라는 어떤가. 민주주의의 뿌리가 취약한 우리를 이탈리아와 견주는 것 자체가 무리다. 몇몇 보수 매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시장을 독점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데도 집권 여당은 변칙적인 수단을 써가며 새 미디어법을 억지 통과시켰다.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새 법은 친정부 언론기업가에게 특권을 보장해 주는 장치일 뿐이다. 반드시 무효화되어야 할 법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칠흑보다 어둔 밤을 맞으리라.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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