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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역설] 쌍용차 사태

등록 2009-07-31 19:31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20세기 전반까지도 파업은 강제 진압되기 일쑤였다. 1913년 미국 재벌 록펠러는 광산노조가 파업을 벌이자 민병대를 투입해 수십명을 사살하고 사태를 종결지었다. 세기의 재벌 카네기 역시 1892년 펜실베이니아의 홈스테드에서 대형 사고를 쳤다. 제강소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용역 수백명을 동원해 유혈 진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악덕 기업가들도 결국은 노동문제의 평화적 타결을 중시하게 된다. 역사의 힘이란 때로 이렇게 무섭다.

하지만 21세기 한국 상황은 아직도 깜깜하다. 평택에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두 달 넘게 농성을 벌이는 동안 사쪽과 정부가 취한 조처는 실소를 자아낸다. 그들은 물과 가스 공급을 끊었고, 음식물 반입마저 중지시켰다. 심지어 각종 소음을 일으켜 노동자들이 잠도 못 자게 했다.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부상에 시달렸지만, 치료도 거부되었다. 이런 끔찍한 비극은 과연 언제나 끝나려는가.

노동자들에 대한 보수 세력의 비판도 편파적이기만 하다. 이번 경우도 쌍용차의 노동생산성이 현격히 낮다는 둥, 임금 지급과 고용도 과잉이란 비판이 쏟아졌지만, 쌍용차 위기의 진짜 원인은 사실 따로 있었다. 수년 전 한국 정부는 쌍용차를 상하이자동차에 매각했지만 감시 소홀로 투자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핵심기술만 중국으로 불법 유출되고 막이 내렸다. 한마디로, 쌍용차의 비극은 정부와 경영진의 무능과 안일에서 비롯된 것이지 다른 게 아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망한 자동차회사들에 구제금융을 주었다. 일자리를 지키려고 그랬다는데 우리 정부는 완전히 딴판이다. 파업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강제 진압부터 계획하는 꼴인데, 노동자는 반란군이 아니다. 그들은 생존권을 지키고자 몸부림치는 평범한 시민,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이다. 지난번 용산에서 무고한 시민을 불태워 죽인 것만으로도 현 정권의 폭력 진압은 이미 정당성을 잃었다는 점, 꼭 명심할 일이다.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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