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옛 속담에 여름 고뿔(감기)은 개도 안 걸린다 했다. 여름에는 감기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속담도 이제 바뀌어야 할 판이다. 고열을 동반한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 속도를 보면 가관이다. 며칠 전에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했다. 상당수 학교는 이미 휴교에 들어갈 정도로 사정이 절박하다.
“인플루엔자”, 즉 독감이 처음 유행한 것은 18세기 중반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였다. 독감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서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을 건너 각지를 휩쓸었다. 그런 최악의 독감이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은 18세기 말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보면, “가경 무오년(1798년), 겨울에 독감이 갑자기 성하여 죽은 자가 셀 수 없었다. 조정에서 부유한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를 구호, 치료하고 시체를 매장하게 하였다”고 했다. 그때 유행한 독감의 위력이 실감난다. 그 시절은 대륙 간 교류가 대단히 미미했다. 그런데도 악성 전염병의 유행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려웠다.
19세기가 되자 국제교류는 한층 활발해졌다. 세계는 독감과 홍역, 콜레라와 천연두 등 각종 전염병에 시달렸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우리나라에도 낯선 전염병들이 들이닥쳤다. 사태가 오죽이나 심각했으면, 동학의 교조 최제우 같은 이는 “궁궁을을”이 적힌 부적을 태워 마시길 권했을까. 물론 콜레라나 천연두를 이런 종교적 처방으로 치료할 수는 없었다.
백신 개발과 치료 방법의 개선이 필요했다. 일찍이 정약용은 홍역을 물리치려고 노력한 끝에 <마과회통>이라는 책을 지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곁에는 정약용도 최제우도 없다. 조류독감에 이어 신종 플루가 횡행하건만 시민들의 건강을 제대로 돌볼 이가 없다. 부자들의 호주머니만 챙겨주기 바쁜 이 정부는 이 와중에도 부자 감세만 고집한다. 그럴 일 아니다. 시민의 목숨 구할 백신도 치료제도 태부족이다. 그런 문제부터 풀어야 맞다.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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