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조선시대에는 격쟁(擊錚)이란 것이 있었다. 백성이 궁궐 담장에 올라가거나 대궐 안으로 뛰어들어가 꽹과리나 징을 울려 임금님의 이목을 끈 다음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식이었다. 격쟁은 성종 때부터 시작해 왕조 말까지 기록이 이어지는데, 실록에서만 모두 300건가량 검색된다. 수치상 한 해 한 건도 못 되지만, 정조와 숙종 때는 그 수가 두세 배는 되었다. 특히 정조는 바깥 행차 때도 격쟁을 허용해 백성들과 교감을 높였다는 게 후세의 평가다.
백성들은 격쟁의 확대를 원했다. 하지만 당시 실상을 들여다보면, 요샛말로 로또 당첨이나 다름없었다. 대다수 백성들은 지방에 거주했으므로 격쟁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서울 사는 백성들에게도 그 기회는 희박했다. 천신만고 끝에 설사 임금님 행차에 다가갔다 하더라도, 격쟁을 하고 싶은 사람이 구름떼 같은데 그 말을 들어줄 임금은 오직 하나였다. 일반 백성이 억울함을 아뢸 기회는 거의 없었다. 요컨대 격쟁을 통해 백성들이 선정의 혜택을 고루 입지는 못했다. 그것보다는 격쟁을 허용함으로써, 선정을 베푸는 왕의 이미지만 창출된 꼴이었다. 격쟁은 왕을 위한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요즘 대통령이 시장에 들러 떡볶기도 사먹고, 장애인 시설도 방문하는 식의 이른바 친서민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애로사항이 전달되고 대통령이 즉석에서 대답하거나 측근들에게 문제해결을 지시한다. 이런 모습은 길가에서 격쟁을 처리하던 조선의 왕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인가 시민들 사이에 ‘이 대통령의 손만 잡으면 로또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유행이란다. 정부여당은 친서민 행보 덕택에 국정 지지율이 오른다고 좋아할지 몰라도, 나라 형편은 영 딴판이다. 적자 가구 수가 2004년 이래 최악의 상황이고, 전셋값이며 물가도 껑충 뛰어올라 시민들의 등허리가 새우처럼 굽었다. 당연히 대다수 시민들은 친서민 행보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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