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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역설] 박정희

등록 2009-10-30 20:46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우리의 반만년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서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였다.” 박정희는 <국가와 혁명과 나>(1963)라는 책에서 자신의 역사관을 그렇게 요약했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 정치사를 강대국에 굴종해온 치욕의 역사로 간주했다. 외래문화만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개성 없는 사회, 줄곧 원시 수준에 머문 빈곤한 나라, 게다가 골육상잔의 늪에 빠진 침체의 역사. 이것이 박정희의 가슴에 새겨진 한국사였다.

부지불식간에 박정희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식민사관의 포로였던 박정희는 당파성과 노예근성을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악덕으로 간주했다. 자주정신과 개척정신의 결핍 역시 한국사의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이기심과 불로소득만 탐내는 사회 풍조도 한국사의 병폐라고 했다. 박정희의 부정적 역사인식은 과도했다. 그는 우리 모두를 명예심조차 잃어버린 비굴한 군상으로 몰아세웠으니, 우리의 역사적 전통을 깔보아도 너무 심하게 깔보았다. 그에게 남은 선택은 오직 독선과 아집의 철권통치였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그가 쓴 책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에는 가령 “민주주의라는 빛 좋은 개살구는 기아와 절망에 시달리는 국민 대중에게는 너무 무의미한 것이다”라는 섬뜩한 언사가 있다. 민주주의란 당시 한국 사회에 불필요하다는 말이다. 앞뒤 맥락으로 보아 누구든 박정희를 반대하면 “당쟁”과 “이기심”의 화신으로 취급되어 마땅했다. 실제로 그는 정적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가 세상을 뜬 지 30년이 되었지만 집권 여당 주변에는 그를 떠받드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심지어 어느 고위 당직자는 만일 박정희가 야당의 주장에 굴복했더라면 근대화는 불가능했다는 식의 위험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독재자의 엉터리 역사관이 빚은 비극적 결과로서 우리는 사회적 갈등과 분열에 오래도록 시달리고 있다. 지도자의 역사인식 여하에 공동체의 미래가 좌우된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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