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역사학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있어온 관행이 그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 중국과 한국의 역대 제왕들도 그랬지만, 서양 중세의 교황이며 절대주의 국가의 군주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사면권을 남용했다. 특사는 무소불위의 제왕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사라면 국가원수가 형의 선고를 무효로 만들거나 형 집행을 면제하는 조처다. 우리 현행법에서는 법무장관에게 특사 요청권이 있다. 그 시행 여부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한다. 그런데 우리는 워낙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아래 있어, 실상은 대통령의 수중에 그 권한이 있는 셈이다.
1776년에 간행된 <상식론>에서 토머스 페인은 “절대주의 국가에서는 군주가 곧 법이듯, 자유 국가에서는 어느 누구도 아닌 법 자체가 군주 역할을 해야 옳다”라고 했다. 이는 일종의 법률주의라 하겠다. 과연 성문법의 전통이 강한 현대 독일에서는 지난 60년 동안 겨우 4차례의 특사가 시행되었을 뿐이다. 더욱이 1969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특사의 위헌성 여부를 검토했고, 그 결과 더욱 특별한 경우에 한해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특사령이 발동된다. 이웃 나라 일본도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국가원수 측근이나 전직 고위 공직자를 특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부적절한 특사로 인해 몇 차례 애를 먹었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 때만 해도 그렇다. 탄핵 소추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대해 후임자인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전면적인 사면 조처를 단행했고, 덕분에 닉슨은 일체의 범죄혐의에 관한 법적 책임을 간단히 벗어났다. 본래 포드는 닉슨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냈기 때문에, 여론은 포드에게 부패 혐의를 두었다. 이런 사건쯤은 무슨 때만 되면 특사가 남발되는 한국에 비할 바 아니다. “큰 재판은 청와대에서 하고 작은 재판은 법원에서 한다”는 소문. 혹 모르시는가.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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