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역사학자
경인년이 밝았다. 새해 운세가 궁금해 서가에 꽂힌 <정감록>을 뽑아들었다. 알다시피 정감록은 18세기부터 널리 유행한 금단의 예언서였다. 그것은 사실 명칭이 상이한 수십 가지 예언서에 대한 통칭이었다. 당시는 소수 양반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횡포를 부렸기 때문에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멸망을 예언하는 <정감록>의 인기가 높았다.
심심풀이 삼아 <정감록>에 기록된 경인년 운세를 알아봤더니,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있다. “해가 흰 호랑이(경인)를 만났으니, 사람은 어디로 갈 것인가. 만일 뱀의 꼬리를 쥐게 되면 틀림없이 흉할 것이다”(오백론사비기)라고 했다. ‘뱀’을 잘못 건드리면 큰 낭패를 볼 거라고 한 점이 인상적이지만 무엇을 상징하는지 잘 모르겠다.
<정감록>의 다른 부분에는 경인년에 닥칠 재앙이 조금은 구체적으로 기술되었다. “백호(경인년)에는 교목(喬木)이 화를 입으리니, 누가 충성을 바치려 하랴.”(서계 이선생 가장결) 이른바 ‘교목’은 교목세신(喬木世臣)이므로, 명망가를 가리킨다. 요컨대 유명인사가 억울하게 당하므로, 민심이 이반할 거라는 일종의 경고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송백목(경인년과 신묘년) 운은 벌같이 일어나는 장수가 창으로 시국에 맞설 것이다”(토정가장결)라고 하였다. ‘장수’ 운운한 것을 보면, 1170년(경인) 정중부가 일으킨 ‘무신의 난’의 기억이 투영된 것도 같다. 그러나 글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어떤 용감한 사람이 사태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앞장설 거라는 뜻이 된다. 재미 삼아 알아본 경인년 나라 운수의 뒤끝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다.
나는 <정감록> 따위를 믿지 않는다. 다만 조상들을 흉내 내어 새해 운수를 점친 것뿐이다. 예언이란 본래 허무맹랑한 것이지만, 거기에도 혹시 무슨 우의(寓意)가 숨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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