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역사학자
고대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는 동전 재료가 부족했다. 그래서 싸구려 쇠를 섞어 악화를 만들게 했다. 화폐가치는 급락했고 왕은 신망을 잃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 이야기의 실제 배경이다. 무엇이든 손만 대면 황금으로 변하는 바람에 왕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괴롭게 죽었다. 신화는 왕의 폭정에 대한 백성들의 응징이다.
기원전 4세기 시라쿠사에서는 통화량 증가로 물가가 폭등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제국은 금융위기에 빠지자 전쟁을 벌였다. 9세기 신라는 재정적자에 시달렸고, 14세기 영국은 백년전쟁에서 패배해 국가부도 위기로 내몰렸다. 16세기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국가부채가 4배나 증가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이런 금융위기는 통치자가 무능해서 생긴 일이다.
그 뒤로 사정이 달라졌다. 1637년 네덜란드에서는 듣기에도 황당한 튤립투기 사건이 일어났다. 암스테르담에서는 튤립 알뿌리 3개가 집 한 채와 맞먹을 정도였다. 마침내 거품이 사라지자 나라경제가 휘청거렸다 한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경기변동이란 불청객이 자주 찾아왔다.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는 1929년의 대공황이었다. 그때 강대국들은 앞다퉈 은행규제에 나섰다. 이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 1944년에 체결된 브레턴우즈 협정이다. 연합국 대표들은 국제간 통화질서를 안정시킬 목적으로 미국 달러화 중심의 고정환율제를 선택했고, 한동안 이 체제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에 의해 해체되었다. 그 뒤 변동환율제가 대세인 가운데 환율급락이 금융위기의 또다른 원인이 되었다.
금융위기의 원인은 나날이 복잡다양해진다. 유가상승이 증시파동을 초래하는가 하면, 외환부족이 문제를 낳기도 한다. 지금은 그리스가 위기의 한복판에 있지만 누구도 감히 안심하지 못할 상황이다. 월가를 맴도는 나비의 가벼운 날갯짓이 서울에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 글로벌 시대다.
백승종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