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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역설] 소신공양

등록 2010-06-04 19:09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약왕보살이 몸에 향유를 바르고 고운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부처님 앞에 나아가 자기 몸을 불살랐다. <묘법연화경>에는 보살의 소신공양에 대해 칭송이 자자하다. “이것은 참다운 법, 석가여래를 공양하는 법이라. 설사 나라를 바치고 처자를 보시한다 해도 이만 못하리니, 이는 최고의 보시니라.”(약왕보살 본사품)

소신공양은 불교 설화에도 적잖이 등장한다. 석가여래의 설법 중에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 먼 옛날 깊은 산속에 홀로 수도하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숲에서 나는 과일과 채소로 연명하며 밤낮으로 정진해 도가 높아졌다. 감복한 토끼 한 마리가 스님을 찾아와 시중들기를 자청했다. 그렇게 잘 지냈는데 갑자기 가뭄이 들어 온 산이 메말라버렸다. 허기진 스님은 식량을 구할 셈으로 하산을 결정했다. 십년공부가 허사로 돌아갈 판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토끼는 제 몸을 불살라 스님에게 바쳤다. 하늘도 무심치 않아 감로수가 쏟아져 내렸다. 숲에 다시 꽃이 피고 과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현실에서도 소신공양의 힘은 놀라울 때가 있다. 1963년 내전이 한창이던 베트남(월남)에서였다. 틱꽝득(釋廣德)이란 스님이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당시 베트남 정권은 독재만으로 부족했던지 불교 탄압이 심했다. 이에 항거하는 뜻으로 스님은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죽음의 문턱을 태연히 넘어섰다. 그 모습이 세계 언론에 보도되자 사람들은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스님의 죽음을 쌀쌀맞게 비웃던 베트남의 응오딘지엠(고딘디엠) 정권은 곧 망했다.

사람이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산목숨을 버리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불교를 믿는 나라마다 소신공양을 한 고승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최근 경북 군위에서도 문수 스님이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요구하며 소신공양을 했다. 소통 불가한 세상을 딱하게 여기고, 어떻게 해서든 생태계의 질서를 지켜보려는 뜻이었다. 저 푸른 산도 강물도 모두가 부처님이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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