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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 역설] 월드컵 제국주의

등록 2010-06-18 21:18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심판이 경기를 통제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 빼놓으면 축구는 침략전쟁과 흡사하다. 남의 영토로 쳐들어가 마지막 한 뼘까지 유린하는 것이 그러하다. 승리를 위해서는 값비싼 외국제 첨단 병기의 구입도 서슴지 않는다. 영웅의 가슴에 번쩍이는 훈장을 달아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막대한 비용이 들더라도 상대를 이기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몇몇 축구 제국이 세계를 지배한 지 이미 오래다. 월드컵은 경기 일정부터 그들의 내부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심판 판정 역시 그들 편만 든다는 비판이 끝도 없다. 축구의 변방 국가들은 제국 출신 코치와 감독을 모시느라 때로 숨가쁜 경쟁을 벌인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사에 남긴 위대한 족적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제국은 또한 용병의 블랙홀이기도 하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축구선수치고 제국의 화려한 무대를 꿈꾸지 않을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스위스에 위치한 국제축구연맹(FIFA)은 제국의 수족으로 매사를 돈벌이와 독점적 지배권 확립의 수단으로 쓴다. 그들 축구 제국의 상업주의는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억대 연봉을 주고 변방에서 데려온 현대판 ‘글래디에이터’(검투사)는 제국의 축구팬들에게 제공되는 신선한 꽃이다. 글래디에이터는 저마다 출신국가의 영웅이라, 적어도 수백만을 헤아리는 고국의 팬들을 제국에 예속시킨다. 이로써 축구 제국은 전지구적 흥행을 벌일 수 있다. 박지성이 뛴다는 이유로 우리는 벌써 수년째 어느 영국팀에 덜미가 잡혀 있다.

월드컵은 국가 대항 돈잔치이며, 축구 제국의 지배권을 확인하는 마당극이다. 참가국과 대기업은 저마다 애국주의와 시장독점을 위해 월드컵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대중매체는 또 제 나름의 잇속이 있어 홍보대사 노릇을 떠맡는다. 이제 월드컵 쓰나미에 휩쓸려 다들 정신이 없다. 공영방송 시청료가 오르고, 지방선거에 진 여당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도 누가 신경이나 쓰는가.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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