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역사학자
“사찰은 권력자가 반대파를 가려내 체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권력의 감시 아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하여 스스로 복종하게 만든다.” 미셸 푸코의 말이다. 근대 감옥의 건축에도 이 원리가 적용되었다. 죄수들은 감시탑에서 자신들의 행동거지를 샅샅이 지켜보고 있다고 지레짐작해 섣부른 행동을 못하게 된다.
사찰의 원리는 악용될 때가 많다. 근대의 독재자들은 반체제 인사에 대한 사찰을 강화해 사회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다. 히틀러와 스탈린 등의 공포정치가 그러했다. 오늘날에도 국가권력에 의한 사찰행위는 여전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 속 빅브러더는 화장실까지 감시해 독자를 놀라게 했지만, 현실은 그보다 심각하다.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송수신된 전자우편 내용은 감시의 눈길을 피하지 못한다.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현관까지 쫓아온다. 감시와 사찰의 기술은 인공위성을 통해 지상에서 움직이는 축구공만큼 작은 물체의 움직임까지 정확히 포착할 수 있다.
사생활 침해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된 것 같다. 테러와 범죄 위협을 빙자해 사찰 대상이 나날이 확대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사찰은 명확히 제한된 범위에서 극히 조심스럽게 허용되어야 한다. 2008년 촛불사건 이후 한때 사이버망명이 유행했고, 시민사회의 토론문화 역시 크게 위축되었다. 이런 부정적 변화의 저변에는 민간인 불법사찰의 악몽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지만, 김종익씨는 ‘쥐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했다는 이유로 사찰 대상이 되어 엄청난 불이익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권력자들이 그동안 비선조직을 통해 허다한 불법사찰을 벌인 혐의가 드러났다. 총리실 압수수색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난 배경이다. 우리는 지난 1990년 보안사령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때문에 정권퇴진운동까지 일어난 사실을 또렷이 기억한다. 은감(殷鑑)이 멀지 않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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