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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 역설] 강대국 요리

등록 2010-08-13 18:18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그들을 요리할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 역사 속 장면 하나. 정도전은 요동 진출을 역설했다. 그는 태조 이성계에게 외이(外夷) 중에도 중원을 평정한 영웅이 많다고 했다. 이런 정도전을 대국 명나라 조정이 괘씸히 여겨 ‘표전문 사건’을 일으켰다. 외교문서를 트집 잡아 글쓴이 정도전을 손보겠다며 소환을 거듭 요구했다. 그러나 조선 태조는 요리조리 핑계만 댔고, 당사자인 정도전은 여전히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요동 정벌을 별렀다. 천하의 명나라도 어쩌지 못했으니, 통쾌하다.

장면 둘. 조선 말엽, 임오군란 때다. 궁지에 몰린 보수지배층은 해괴한 해법을 내놓았다. 내부의 적을 짓밟기 위해 중국 청나라 군대를 데려오자는 것이었다. 공짜는 없는 법. 중국은 제 잇속부터 챙겼다. 그들은 일본을 상대로 조선에서의 주도권 탈환에 나섰다. 위안스카이(원세개)는 중국이 보낸 조선총독처럼 굴며 십년 넘게 국정을 휘저었다. 그사이 중국 상인들이 쏟아져 들어와 조선의 상권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서양 중세의 부자나라 베네치아도 외세로 말미암아 망했다지 않는가.

마지막 장면은 지금 공연중인 김상수의 풍자극 <화사첩>이다. 극중 왕은 포클레인으로 땅 파는 장난으로 밤을 낮 삼는다. 대신들은 궁중암투밖에 모른다. 그들은 동맹국 ‘잉글랜드’의 위세에 매달려 사느라 제 나라 말도 역사도 내팽개쳤다. 그러던 어느날 오랑캐가 침입해 온다. 고관대작들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전시작전권을 동맹국에 맡기고, 통상협상도 위대한 동맹국의 이익을 위해 서둘러 마무리한다.

세 장면 가운데 우리 처지에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 한-미 동맹에 목을 거는 바람에 남북관계도 중국과의 우호친선도 삐걱대더니, 이제 이란의 미움까지 샀다. 어느 정치가가 말했듯, 한반도는 4강으로 둘러싸인 세계 유일의 나라요, 중국과 일본은 문화를 공유하는 운명적 동반자다. 우리의 길은 자주와 평화의 토대 위에 전개될 균형 잡힌 외교뿐이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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