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길거리에 끌고 다니며 망신을 주어 벌하는 것을 ‘조리돌린다’고 한다.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군인들이 이정재 등 정치깡패들을 잡아다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고 쓴 펼침막을 들리고 서울시내 행진을 시킨 게 한 예다. 지난여름 중국에서는 단속에 걸린 성매매 여성에게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어 길거리에 세워둔 사진이 공개된 바 있다. 죄인의 ‘스중’(示衆·조리돌림)을 관행처럼 여겨온 중국에서 이 사건은 인권 논란의 불씨가 됐고, 결국 정부가 나서서 조리돌림을 금하기에 이르렀다.
반인권적·전근대적 형벌이지만,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지난 23일 국내 인터넷에서도 조리돌리기가 횡행했다.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서 철없는 말로 상처를 준’ 이들에 대한 단죄였다. 몇몇 철부지들이 빌미를 제공했다. 피난을 가더라도 피난 짐이 명품 가방에 들어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말로만 듣던 폭탄을 직접 본 연평도 주민들의 기분이 “대박”일 거라며 환호하거나, 자기 남편의 생일을 맞아 혹시 북한이 축하 폭죽을 쏜 거냐고 묻는, 말 그대로 철부지였다.
누리꾼들은 조리돌리기에 나섰다. 글과 사진을 퍼나르며 ‘얘가 이런 헛소리를 했다’고 망신을 줬다. 인터넷 곳곳에서 캐낸 주소, 연락처, 주변인물과 과거 이력을 공개해 부끄럽게 만들었다. 일부 언론이 기사화하면서 철부지들의 입지는 한층 좁아졌다. 결국 서비스를 탈퇴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리트위트(RT·재전송) 등으로 퍼나른 사람들과 언론 탓에 철부지들의 글은 더 널리 퍼졌고 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사실상 공범이로되 이들은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았다.
된장녀와 개똥녀 등의 전통에 따라, 어느 철부지는 ‘폭죽녀’로 명명됐다. ‘○○남’이란 표현은 당최 떠오르지 않는 이 사회의 성적 배타성이 드러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구축하는 상호감시체제의 윤곽도 엿보인다. ‘정보 공유’ 등 애초의 구호는 온데간데없고, 서로서로 말과 행동을 감시하고 제약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제 우리에겐 철없을 자유마저 없는 건가.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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