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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승종의 역설] 아름다운 홍동

등록 2010-12-31 17:49수정 2010-12-31 23:38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을 아시는가. 삼십여년 전 토박이 주형로씨가 홀로 유기농 벼농사를 시작한 곳이다. 당시 정부는 헐값의 미곡증산만 고집했지, 유기농업 같은 것이 왜 필요한지를 전혀 몰랐다. 홍동 사람들은 정부의 냉대를 참아가며 묵묵히 소신을 지켜나갔다. 그러던 1990년대 후반, 세상은 변했고 정부도 한발 물러섰다. 다들 홍동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초봄 벚꽃축제를 고비로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다. 흥미롭게도 홍동 농부들은 오리와 우렁이를 친자식처럼 키운다. 그렇게 논에서 호강하며 자란 동물들은 한여름철 김매기로 자식 도리를 다한다. 홍동 어린이들은 논두렁을 타넘으며 물고기와 물벌레를 사귀는 사이, 저도 모르게 쑥쑥 농부로 큰다. 가을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일 때면 마을 인심은 더욱 순해진다. 문당리 오리쌀 축제는 왁자지껄하고, 홍동거리축제는 차고 넘친다. 작년에는 인문주간까지 풍성했다. 잔치며 행사에도 홍동다움은 따로 있다. 모든 일은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끝까지 함께한다.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가 부럽지 않다.

홍동 사람들은 조직의 달인이다. 4000명이 모여 사는 한적한 시골인데도 민간단체가 서른개도 더 된다. 유달리 많은 것은 협동조합. 커피집까지도 독립된 협동조합이란다. 교육도 같은 이치다. 어린이집부터 유기농부 키우는 전문대학까지 마을사람들이 함께 거든다. 연전에는 어엿한 농업연구소까지 세우더니, 이제 볼품 있는 마을도서관까지 들어선다. 이 모든 것이 마을사람들의 자발적 요구에서 생겨났다.

목돈 들어가는 일은 외부 후원 없으면 절대 안 된다. 홍동도 마을사람들만의 홍동은 결코 아니다. 그런 줄을 다들 너무 잘 안다. 하여, 홍동 사람들은 김장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더라도 미리 작정한 금액 이상은 요구하는 법이 없다. 세상에서 귀한 것이 우리 서로의 믿음이요, 평화로운 공생 아닌가. 신묘년에는 위정자들도 부디 깨치기를!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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