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지진과 해일은 그래도 우리 일본 사람들로서는 익숙한 점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겨낼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방사능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방사능 오염의 공포로 떨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 가꾼 푸성귀도 먹을 수가 없고, 아무것도 안심할 수가 없어 절망적입니다.” 엊그제 어느 모임에서 만난 일본 농부는 그렇게 말했다.
그분의 증언이 아니라도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로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쯤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이 사고 때문에 수백만 일본 시민들이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전기 사용량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있다는 소식은 놀랍다.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인의 생활이란 전기 없이 되는 일이 없지 않은가. 현관문을 여닫는 데도 전기가 필요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도 전기 아니면 안 된다. 심지어 농부가 가축 기르고 논밭에 물 대는 일조차 전기라야만 한다. 현대인은 전기의 노예인 것이다.
값도 싸고 공급도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세계 각국은 원자력의 위험을 애써 못 본 척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태로 이제 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지난 2주 내내 원자력발전에 대한 논란이 각종 매체를 휩쓸었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25만을 헤아리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원자력발전소의 전면 철폐를 요구했고, 주의회 선거에서도 녹색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유럽 시민들은 기존의 에너지 및 환경 정책을 전면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다들 이렇게 야단법석인데도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에 사는 우리는 태연하다. 원자력발전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얼른 그 불을 꺼야 한다. 화석연료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 역시 재앙의 싹이다. 말로만 녹색성장을 외치는 기만적 작태를 중지하고, 이제라도 우주자연의 공존공생을 최우선 과제로 선포하자. 후쿠시마의 회색 연기는 가족의 평안, 일상의 평화보다 소중한 것이 없음을 침묵 속에 절규한다.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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