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옛날 사람들은 무턱대고 재산을 불리려 애쓰지 않았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현대인으로서는 좀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전통사회에서는 그랬다. 돈이 굴러오는 길이 빤히 보이더라도 눈을 딱 감아버린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해 전, 남부 지방 어느 마을의 역사를 연구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마을에 살던 김씨들은 이자놀이로 종잣돈을 만든 다음, 그것으로 종중의 논과 밭을 마련했다. 그 재산을 불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씨네는 종중의 논밭이 60마지기를 넘지 않도록 했다. 이것은 하나의 불문율이었다. 그들은 종중 살림이 좀 넉넉해지면 언제나 큰 잔치를 열어 온 마을 사람들까지 함께 즐겼다. 그 재물은 사당을 고친다거나 조상의 묘를 보수하는 데도 썼고, 서당의 운영비나 과거 시험 보러 가는 일가친척의 노잣돈 또는 병든 친척을 돕는 데도 긴요했다. 이처럼 재산이란 흩기 위해 존재했다. 축재 자체가 목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어느 마을에서나 사정은 비슷했다. 돈에 집착하면 ‘노랑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런 집은 앞날이 껌껌했다. 이웃의 마음을 잃으면 금세 패가망신했다. 재산이 많아도 외톨이로 살기란 불가능한 것이 이 나라였다. 다들 그런 줄을 알았기 때문에 부자라도 덕인이라는 이름을 얻고자 노력했다. 돈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칼날 위에 서기를 바란 부자는 거의 없었다.
‘돈’이란 우리말에 담긴 뜻이 심오하다. 너와 네가 돌려가며 쓰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진귀한 조개껍질이나 비단 따위를 가리키는 중국의 ‘화폐’란 용어나 황금을 뜻하는 서양 여러 나라의 낱말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전통은 산업화와 더불어 끝나버렸다. 요새 재벌들은 문제투성이다. 입만 열면 자유경쟁이니 시장 질서를 내세우지만, 자식들에게 재산 물려주기에만 급급한 게 그들의 실상이다. 이거야 원 시정잡배의 억지쓰기와 뭐가 다른가.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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