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중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매국노는 진회(秦檜)다. 그는 송나라 고종 때의 재상이었다. 금나라의 무력을 당해낼 자신이 없었던 진회는 화의를 결심했다. 이에 걸림돌이 되기만 하면 모조리 죽이거나 내쫓았다. 그의 참소로 희생된 충신 가운데 가장 이름난 명장은 악비(岳飛)였다. 악비는 금나라 군대를 싸울 때마다 이겨, 어필로 된 ‘정충악비’(精忠岳飛)라는 깃발을 하사받을 정도였다. 악비는 승승장구했고, 여세를 몰아 금나라로 쳐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진회의 모략에 걸려 죽고 말았다.
조선의 문신 성대중은 진회를 위해 변명하였다. 정말로 악비를 죽인 이는 고종이었다는 주장이었다. 감히 악비가 황태자를 세우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고종의 미움을 샀다는 것이다. 일찍이 성리학의 대가 주희도 악비의 죽음에 대해 “진회도 강골이었지만 악비 역시 멋대로 굴었다”고 하여 양비론을 폈다. 이에 대해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주희의 견해를 반박하였다.
송나라 이후 중국인들은 진회를 매우 증오하였다. <거이록>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진회의 무덤을 “개무덤”이라고 불렀다. 역시 중국 문헌인 <물리소지>에는 황당한 전설까지 실려 있다. 16세기 말 항주에서 돼지 한 마리를 도살했는데, 그 뱃가죽에는 “진회의 열 번째 후신”(秦檜十世身)이라는 붉은 글씨가 발견되었단다. 19세기 조선의 이규경은 이러한 문헌을 두루 인용하고 불교의 지옥론까지 빌려, 진회처럼 불충불효한 인간은 죽어서라도 극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다.(<오주연문장전산고>)
위키리크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고 미국 쪽에 고자질한 사람이 있었단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추진될 때 우리 쪽에서는 청와대의 회의 내용까지 상대방에게 미리 알려줬단다. 주권국가라면 어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만약 이런 일들이 정치관행이 되었다면, 진회나 이완용을 매국노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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