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로마 사람들은 가정의 평화를 가장 초보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다음은 국가간의 평화였다. 완성 단계는 신과 인간 사이의 평화였다. 이 세 가지 차원에서 평화가 이룩된다면 인간의 삶은 더없이 행복하다. 이것이 로마인들의 신념이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표현은 행복을 갈구하는 그들의 열망을 담은 정치구호였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뒤엉킨 인간사회의 현실은 평화와 거리가 멀다. 19세기 식민지 쟁탈전에서 승리를 거둔 대영제국은 거드름을 피우며 “팍스 브리태니카”를 외쳤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평화였던가. 어처구니없는 일은 제2차 세계대전 뒤에도 이어졌다. 전승국 미국의 세계지배가 예견되는 가운데 사람들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노래했다. 그 라이벌인 소련의 저항이 만만치 않자 “팍스 루소아메리카나”라는 용어도 나타났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미국의 세계지배권이 더욱 공고해지자 사람들은 다시 “팍스 아메리카나”를 주문처럼 외워댔다.
쓸데없는 짓이다. 그들 최강자가 인류평화에 기여한 적은 실상 전무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짓 평화의 주체 역시 횡포를 일삼다 언젠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이다.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느라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재편하고, 지구상 온갖 전쟁에 뛰어든 ‘강한 미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최근 미국 정부는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에 이어 안와르 아울라끼까지 살해하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결코 총구에서 나올 수 없다.
억압과 착취를 근원적으로 청산해야만 참 평화가 깃든다. 평화는 곧 정의다. 동양 고전 <주역>이 가르치듯, 평화란 음(陰)이 양(陽) 위에 올라탄 모양이다. 이것은 강약의 처지가 온전히 뒤바뀌어야 실현될 수 있다. 대통령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문제의 인화학교 사람들도 당해보면 알 것이다. 사람이 굳이 바꿔보지 않고서도 깨친다면 실로 복되도다.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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