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1966년 5월 한국비료공업이 사카린을 밀수하다 들켰다. 박정희 정권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이 사건 자체를 극비에 부쳤던 것이다. ‘밀수’는 척결되어야 할 ‘5대 사회악’이라고 떠들던 정부가 법질서를 무너뜨려가면서까지 재벌을 편들었으니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이 있는가. 1966년 9월15일 비료회사의 불법행위가 언론에 폭로되었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일주일 뒤 야당 국회의원 김두한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말장난만 치던 국무총리 정일권과 부총리 장기영 등에게 인분 세례를 주었다. “이병철이 밀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범죄를 저지를 만한 환경을 조성해 줬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파괴하고 재벌과 유착하는 부정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현 정권을 응징하고자 한다. 국민의 재산을 도둑질하고 이를 합리화시키는 당신들은 총리나 내각이 아니고 범죄 피고인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선 너희들이 밀수한 사카린 맛을 봐라.” 시민들은 김두한을 쾌남아로 여겼다.
문제의 기업가 이병철은 사태가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대국민선언을 발표했다. 자기는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문제의 비료공장은 국가에 헌납하고, 반대여론이 들끓던 중앙매스컴과 성균관대학교의 운영권도 포기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1968년 2월 이병철은 사업에 복귀했다. 재벌의 맹세란 믿을 것이 못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야당의 요구를 죄다 묵살했다. 밀수사건은 얼렁뚱땅 넘어갔다. 관계 장관에 대한 처벌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민들의 영웅인 김두한 의원은 어찌되었나. 의원직을 잃고 옥에 갇히더니 얼마 뒤에는 가난 속에 쓸쓸히 세상을 떴다. 법은 국회의원에게 품위 유지를 요구한다. 백번 옳은 말이지만 그 품위란 것이 무엇인가. 똥바가지와 최루탄이 큰 잘못이라면, 백주대낮의 날치기 통과는 퍽이나 점잖은 짓이라는 것이냐. 똥 묻은 개가 감히 어디서 큰소리를 치는가.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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