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맞아요, 수상님>이란 영국의 정치 풍자 시트콤이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극중에서 수상의 과학담당 비서관은 소련의 침략 위험을 경고한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서유럽으로 쳐들어오지 않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서유럽 국가들을 야금야금 잡아먹을 것입니다. 수수방관하다가는 반격용 핵단추 한번 눌러보지 못한 채 당할 겁니다.” 역사적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동유럽으로 번져나간 서구적 가치관이 막판에는 소련까지 쓰러뜨렸다.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밀고 나가는 것. 서양 사람들이 ‘살라미 전술’이라 부르는 것이다. 딱딱한 이탈리아식 소시지 살라미를 잘게 썰어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표현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40년대 후반 헝가리에서였다. 그때는 냉전시대, 동구권의 공산화가 한창이었다. 헝가리 공산당은 살라미를 저미듯 반대파를 차례로 제거하였다. 우선 우파를 파시스트로 몰아 처단했고, 그다음에는 중도파를 없앴다. 마지막에는 공산당의 내부 숙청까지 밀어붙였다.
동서고금 어딘들 이런 꼼수가 없겠나. 최근 독일에서는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이 고약한 살라미 전술을 썼대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가 니더작센 주지사였던 2008년, 특혜성 저리 융자를 받아 주택을 구입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당사자가 사태의 전모를 밝히지 않자 여론의 궁금증은 외려 커졌다. 그러자 불프는 언론사에 직접 전화를 걸었단다. 그는 언론인의 휴대전화 음성사서함에 일종의 협박 메시지를 남겼다.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에 저지른 일이다. 당연히 독일 여론이 들끓었다. 끌려나오다시피 방송에 출연한 불프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헌 사건을 새 사건으로 덮고 지나가는 한국의 정부·여당은 확실히 한 수 위다! 곤경에 빠진 각국의 정치인들에게 서울행 정치유학을 강추한다.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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