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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근혜식 민주주의, 이래서 불안하다 / 김이택

등록 2012-12-13 19:28수정 2012-12-13 22:25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두 번의 대선 후보 티브이토론에서 제일 손해 본 건 아무래도 박근혜 후보인 것 같다. 초박빙 판세가 된 데는 티브이 토론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1차 토론에서 ‘다카키 마사오’와 ‘6억원’이 인터넷 공간을 달구더니 2차 토론 뒤엔 ‘지하경제 활성화’가 불후의 어록으로 떠돌고 있다. 8월 기자간담회에 이어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다니 어휘력 빈곤 문제만은 아닌 모양이다.

정작 심각한 건 박 후보의 답변 내용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김종인 전 장관을 영입하며 경제민주화 공약을 앞세워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 뒤에도 줄곧 빨간색 당 로고 및 유니폼과 함께 경제민주화를 대변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워왔다. 그러다 대선 공약 발표 단계에서 김 전 장관이 재벌개혁의 핵심으로 꼽아온 순환출자 해소 등이 빠진 건 잘 알려진 얘기. 사실상 경제민주화는 이때부터 반쪽짜리가 돼버렸다. 이번 2차 티브이 토론에선 한발 더 나아가 전경련 성명을 연상시키는 경제위기론을 반복하며 5년 전의 줄푸세 공약까지 “경제민주화와 다르지 않다”고 옹호하고 나섰다. 재벌 중심의 성장전략을 상징하는 줄푸세를 다시 껴안는 순간 재벌개혁은 실현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빈껍데기로 전락했다.

두 가지가 궁금하다. 그사이 경제 상황이 달라졌다는 정도로 넘어가도 될 것을 왜 5년 전 공약까지 황당한 논리로 변명하려 드는 걸까. 혹시 ‘내 사전에 말바꾸기란 있을 수 없다’는 도그마에 주변에서 직언조차 못하는 건 아닌가. 또 당무를 거부해온 김 전 장관의 돌연한 복귀는 뭔가. 결투하듯 의원들을 몰고 가 무릎 꿇린 사건을 온 국민이 아는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 부러진 해명도 없다. 지난 4일 한국방송 ‘시사기획 창’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의 진실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더니 그제는 다시 “박 후보의 의지를 믿는다”니. 나름 합리적인 원로 경제전문가 한 명을 박 후보가 바보로 만들었다.

경제민주화 공약 퇴색 과정은 박 후보 체제의 일방통행과 불통성을 잘 보여준다. 퍼스트레이디나 공주, 아니면 제왕적 당수로 살아온 박 후보에게 상호 견제와 비판, 소통과 공감을 중시하는 민주적 감수성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정치발전을 지연시켰다”고 마지못해 사과했지만 맘속엔 “5·16이 있었기 때문에 4·19도, 3·1운동의 희생도 헛되지 않았던 것”(1989년 5월 ‘박경재의 시사토론’)이란 생각이 깊숙이 감춰져 있을 것이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왔다”는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도 주변에서 바른말 해주는 사람이 없는 탓일지 모르겠다. 지난 6월 엠비시 노조에 파업을 풀면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를 믿고 복귀한 노조를 속였다. 10월30일 “공영방송 사장 임명을 투명하게 하겠다”고 말해놓고는 다음달 방문진 이사들이 추진하던 김재철 사장 해임안을 김무성 선대본부장을 통해 좌절시켰다. 김 사장이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엠비시 기자·피디들의 마이크를 뺏고 교육센터에 몰아넣은 사이, 엠비시는 더 망가져 안철수 표절 의혹 등 기본조차 의심스런 보도로 친여 편향의 방통심의위한테까지 경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지상파 화면엔 박 후보의 웃는 얼굴이 가득하다. 검증 방송이라도 제대로 하려면 자리를 걸어야 한다. 불공정 보도가 판치는 종편까지, 방송은 5·6공 수준으로 전락했다. 언론이 흔들리면 민주주의 뿌리가 흔들린다. 박근혜식 민주주의, 이래서 믿기 어렵고 불안하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관련영상] <한겨레캐스트 #13 -오피니언>박근혜의 ‘경제민주화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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