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야권은 왜 졌을까? 그리고 이제부터 무엇을 성찰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로 이번 대선은 투표율이 폭발적으로 높아졌는데도 보수 후보가 약진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인터넷과 사회연결망서비스(에스엔에스)는 2030세대와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알았는데, 5060세대가 카카오톡을 대거 활용해 결집능력을 과시했다. 예상과 달리 보수표가 숨은 표로 자리잡고 있다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온 이면에, 여론 형성 기제의 변화가 자리잡았던 셈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지형 또는 담론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것으로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진보개혁 진영이 볼 때 박근혜 당선인은 여전히 독재자의 딸이며, 정책기조는 이명박 정권을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이 박 당선인을 선택한 현실을 진보개혁 진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가령 2030세대의 각성과 참여에 방점을 두는 야권의 전통적인 설득 전략은 계속 끌고 갈 수 있겠는가? 차제에 진보개혁 진영은 기왕의 정책과, 정책을 표현하는 언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지 모른다. 긴 호흡으로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깊이 분석하고 토론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둘째로, 민주당은 지도력과 협동능력의 결여를 철저히 성찰해야 한다. 문 후보의 선거운동은 메시지 혼란이 극심했다. 문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라며 복지담론을 내세우더니, 갑자기 정권심판과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얼마 뒤에는 기성 정치의 폐해와 정치 쇄신으로 초점을 옮겼다. 안철수 전 후보 쪽 눈치를 보며 끌려다니기도 했다. 강렬하고 일관성있는 자기 목소리도 없이 표를 끌어모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거운동의 혼란은 단일한 선거대책 사령탑이 없는 데서 비롯했다. 선거는 전쟁과 비슷하다. 선거대책기구는 민주성이나 수평적 소통보다는 일사불란함이 중요하다. 박근혜 당선인이 평소 미워했다는 김무성 전 의원을 데려다가 선거대책본부장에 앉힌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무려 10명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두고 우왕좌왕했다. 문 후보는 선거대책기구가 효율적으로 자신을 뒷받침하도록, 권한과 지도력을 행사하는 데 명백히 실패했다. 많은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협동능력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뒷전에서 팔짱을 끼고 후보한테 훈수만 하려 했지 걷어붙이고 뛰질 않았다. 김대중, 노무현 같은 거목의 시대는 야권에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지도력을 개발하고 협동능력을 발휘하는 풍토를 만들지 못한다면 야권은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전 후보도 자신의 행보를 스스로 성찰하기 바란다. ‘안철수 현상’을 통해 정치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집약해낸 점은 여전히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내내 뜨뜻미지근했다. 문재인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라고 말하고 경쟁 대열에서 사퇴했으면 그때부터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지원활동에 전력을 다하는 게 정치 이전에 세상살이의 도리일 터다. 그의 행보는 ‘안철수 현상’의 신선한 맛까지 반감시켰다.
미국 민주당과 진보적 지식인들은 2000년, 2004년 대선에서 거듭 공화당에 패하고 충격에 빠졌다. 순간 의기소침했지만 이들 사이에선 새로운 울림이 크게 생겼다. 이들은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열정적으로 알고자 했다. 단체와 싱크탱크를 띄우고 토론회와 연구발표회를 조직했다. 지금 야권 지지자들한테는 다각도의 연구와 성찰이 절실히 필요하다. 18세기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서 활약한 작가 겸 사상가 토머스 페인은 “우리 속엔 세상을 새롭게 시작할 힘이 있다”고 했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한겨레 캐스트 #18] <대선 특집> 박근혜 시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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