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무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첫 정책 행보로 경제단체를 찾아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박 당선인은 그동안 경제가 대기업과 수출에 의존하는 외끌이 경제였다면 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내수와 수출이 함께 가는 쌍끌이 경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경제를 살리는 중심에 중소기업이 있다며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대기업에는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과 고통분담을 주문했다.
박 당선인은 재계 맏형이라 할 수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의 만남에 앞서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상공인단체연합회를 먼저 찾았다. 지난 2007년 이명박 당선인이 대기업 총수들을 앞장서 만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한 것과 대비된다. 외끌이에서 쌍끌이로 전환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박 당선인은 약속을 중시해 그의 정제된 첫마디는 기대를 갖게 한다. 경제민주화의 수위를 낮췄지만, 누누이 공약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는 귀에 익을 정도다. 하지만 역대 정권의 경험을 보면 공정경쟁과 상생이 말처럼 쉽지 않다. 동반성장위원회까지 만들어 요란을 떨었으나 헛발질로 끝난 현 정부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재벌개혁을 완수하겠다고 공언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참여정부에서 5년 내내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통령 자리를 역삼각형에 비유한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할 일은 삼각형의 윗변처럼 넓고 크다. 그러나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권력적 기반은 역삼각형의 아래 꼭짓점처럼 좁다. 당연히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한번 흔들리면 그다음부터는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그래서 점점 지지를 잃는 악순환을 겪는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뿐 아니라 관료의 조직이기주의와 부처간 갈등, 선거와 정당제도가 단단히 발목을 잡기 십상이라고 한다. 1988년부터 2006년까지 3131건의 법안 처리 자료를 분석해보니 행정부 정책 의제로 채택돼 여러 대안을 마련하는 데까지 평균 14.5개월이 걸렸고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데 7개월, 그리고 국회를 통과하는 데 7개월, 마지막으로 시행에 들어가기까지 또 5.9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법안 하나가 35개월, 거의 3년의 세월을 잡아먹은 것이다. 재분배 정책과 같이 누군가의 몫을 가져와 다른 쪽에 주는 정책은 특히 엄청난 논란과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중소기업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면 대기업의 횡포와 불공정거래를 근절해야 한다. 돈이 될 만한 사업 분야에 재벌 총수 일가가 출자하는 회사를 차려 진출하고 여기에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주는 바람에 중소기업은 숨통이 막혔다. 하지만 재벌은 규제하기에는 너무 힘이 세고 입김이 강해 몸집 부풀리기를 막지 못했다. 기대 못지않게 “선거 때마다 중소기업 벌떡 일으켜세울 것처럼 큰소리치지만, 선거 끝나면 기다리다 속 터져 죽을 뻔한 게 어디 한두번인가”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새누리당이 친재벌 보수정당의 한계가 분명해 말의 성찬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민생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의 성패는 ‘중소기업 대통령’의 가시화 여부에 달려 있다. 칼바람을 맞아가면서라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면 절반은 성공이요, 말만 앞서는 데 그치면 절반의 실패를 안게 될 것이다. 가장 강력한 견제세력인 야당이 얼마든지 우군이 될 수 있다는 점, 재벌 독식을 막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그 어느 때보다 넓다는 점은 꼭짓점을 받쳐주는 큰 힘이다. 박 당선인의 의지와 실행력에 달렸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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