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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통일대박론의 진정한 의미

등록 2014-02-18 18:28수정 2014-02-28 17:07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정치인들의 말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정치학에선 금물이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경우가 하도 많기 때문이다. 말이 아닌 행동을 봐야 그 정치인의 노선을 알 수 있다. 오바마는 ‘변화’를 들먹여서 두 번이나 당선에 성공했지만, 기존의 민영 의료보험의 틀을 깨지도 못하는 연방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이외에 과연 변화된 것이 있는가? 한국의 경우는 더 심각해 대부분의 대통령 공약들은 현실화될 수도 없고 현실화될 일도 없는 동화책에 불과하다. 이명박의 747공약 중 실천에 옮겨진 것은 하나라도 있는가? 참, ‘7% 성장’을 공약한 것은 실은 이명박도 아니고 노무현이 처음이었다. 유권자들을 바보로 취급해서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로 득표해보려는 전략의 차원에서는 여야도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나 고급 공직자들의 말을 유심히 들어야 한다. 그들의 말 속에서 그들의 세계인식의 프레임이 여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의 최근 ‘통일대박론’은 의미심장하다. 일면으로 보면, 대부분의 정치인들의 발언들이 그렇듯이 그저 허황한 낭설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지금의 시점에서 도대체 무슨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점진적 평화통일을 이야기한다면, 햇볕정책을 계속 폈을 경우에도 갈 길은 한참 멀었을 것이다. 신뢰구축, 경협, 군축, 남북한을 아우를 수 있는 과도기적 공동체의 기초 쌓기 등은 빨라도 수십년의 시일을 요할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이명박이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며, 박근혜는 이명박의 재앙적인 대북정책 후과를 시정하는 데 거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 같으면 통일 그 자체보다는 신뢰구축 프로세스를 다시 가동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만에 하나 북한이 정말 심각하게 흔들린다면? 그다음 가장 현실적 시나리오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보다는 북한의 관민들이 차라리 더 반길 중국의 개입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개입이 한반도를 무대로 하는 중·미 무장 갈등으로 번진다면… 한반도 역사로서는 아마도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이상의 재앙이 될 것이다.

평화통일 아니라면, 북한 붕괴와 미국의 도움을 받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시나리오를 이야기한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당분간 매우 적으며, 혹시나 현실화될 경우에는 ‘대박’이 아닌 초대형 비극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박근혜 주위 극우들의 특유의 소망적 사고가 작용돼 장성택 숙청 등 북한에서의 일련의 사태들을 ‘지배층 분열, 지배구조 약화’로 오독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장성택 숙청이 보여준 것은 북한의 지도부가 고위관료에 의한 자원의 사유화, 곧 현대판 ‘호족’들에 의한 관료적 ‘소왕국’의 출현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것뿐이다. 곧, 이는 북한 붕괴 임박의 조짐이라기보다는 수령주의적 1인통치 구도가 제3대에 가서도 다시 공고화될 수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면 만에 하나 북한이 정말 심각하게 흔들린다면? 그다음 가장 현실적 시나리오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보다는 북한의 관민들이 차라리 더 반길 중국의 개입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개입이 한반도를 무대로 하는 중·미 무장 갈등으로 번진다면… 세계의 무기업자들에게야 대박이겠지만, 한반도 역사로서는 아마도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이상의 재앙이 될 것이다.

위에서 보다시피 통일대박론에는 근거도 논리성도 전무하다. 그러나 남한의 경제·정치 영토가 북한으로 확장돼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들이 국내 고위관계자들의 입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것 자체는 중요하다. ‘통일대박’이라면, 국정원장 남재준의 “조국을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에 비해 조금 얌전한 편에 속하기도 한다. 남한 정부의 일부 언행은 북한의 국가적 입장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계속 준다. 예를 들어 지난 한-러 정상회담에서 박근혜가 러시아와 북한의 나진·하산 물류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양해각서에 사인한 뒤로는 “부산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거쳐 서유럽으로 열차로 갈 수 있는 유라시아 시대” 등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상식적으로 북한의 동의 없이 이 ‘유라시아 시대’는 그저 허황한 꿈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유라시아 시대’를 거론하는 박근혜는 북한을 국제정치의 독립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양 그 입장에 대한 관심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듯하다. ‘우리 경제 영토로 삼키고 말겠다’는 이와 같은 야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여기에서 한 가지 일반론적 이야기로 먼저 들어가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모범적 신자유주의 사회에 가까운데,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사회 질서는 자전거와 같다. 자전거가 계속 굴러가지 않으면 바로 넘어지듯이, 신자유주의는 계속해서 그 경제·정치 영토를 넓히지 못하면 바로 이윤율 저하, 과잉 축적의 위기에 빠진다. 원래 신자유주의의 시발점은 고임금 노동과 제조업 기반의 자본을 축으로 했던 전통적 포디즘 모델에서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였다. 1960~70년대에 독일과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의 아시아 신흥산업국가들이 제조업 시장에 뛰어든데다가, 최근에는 중국 등 후발주자들까지 가세해 과잉생산의 현상이 뚜렷해지고, 오일 등 에너지 자원이 비싸지는 것은, 과거와 같은 자국 고임금 노동자들을 주로 고용하는 제조업 위주의 모델이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본이 찾아낸 돌파구는 바로 국내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고용질서로의 전환과 국외로의 확장, 그리고 금융부문으로의 전환 등의 삼두마차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중국 등 저임금 국가로 쳐들어오는 핵심부와 준핵심부 자본들이 거기에서 값싼 소비재를 만들고, 국내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당해 사실상 실제 소득이 떨어진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그 값싼 소비재를 구매하면서 실질적 소득 저하를 덜 실감하게끔 하는 전략이다. 또 동시에 금융업으로 전환하는 핵심부 자본들은 끊임없이 주변부 투자를 통해서 초과이윤을 모색하고, 그 이윤의 일부가 세금으로 떼여 실질적으로 가난해지는 대다수 자국민들의 기초복지비용으로 쓰임으로써 그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국가와 자본의 생존방식이다. 한마디로 ‘확장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이 법칙에 따라서 지난 25년 동안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핵심부·준핵심부 주요국가들은 그들이 정치력까지 행사해서 현지 정권을 통해서 해당 국가의 자본에 필요한 정책들을 손쉽게 집행케 할 수 있는 일종의 신자유주의판 신식민지들을 확보해놓았다. 예컨대 미국에는 그 정부가 미국의 말을 대체로 잘 듣고, 그 수출의 80%가 미국으로 가고, 그 해외투자 유입의 약 50%를 미국이 담당하는 멕시코가 있다. 또 1억1000만명 정도의 멕시코 총인구의 약 10%에 해당되는 수의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 안에서 이민자로서 제일 힘들고 위험한 노동을 맡아 그 송금으로 멕시코 서민인구의 상당 부분을 먹여 살리기에, 미국에 대한 종속은 풀뿌리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유럽연합에 가입된 옛동유럽권의 주요 국가(체코·폴란드·헝가리 등)의 경우에는 정치적으로 독일이 압도적으로 주도하는 유럽연합의 행정기관에 복속하게 됐으며, 경제적으로 외자의존경제의 전형이 되고 말았다. 가장 제조업 발달 수준이 높았던 체코 같으면, 전체 경제에서의 외자기업 비중은 1995~2009년 사이 7%에서 42%까지 오른 것이다. 유럽치고 비교적 약한 스웨덴의 금융자본에마저도 그들이 은행주식의 약 90% 정도를 보유하면서 금융계를 좌우하고 정부를 마음대로 압박·조정할 수 있는 모범적 신식민지인 에스토니아가 있다. 스웨덴의 국민총생산은 대한민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말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고 외치는 “개방, 개혁”은,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멕시코나 체코, 에스토니아가 되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민중으로서도 한국 피지배자로서도 이와 같은 ‘새끼 제국주의’를 배격해서 평등하고 민중 본위, 북한 주민 등 약자 본위의 통일을 이루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다.

그러니까 한국 지배자들로서는, 단순한 자본의 침윤을 넘어 현지 정부까지 마음대로 움직여 한국 자본을 위한 특권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형 신식민지가 없어서 안달이고, 계속해서 북한에 대한 식민화 망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고 외치는 “개방, 개혁”은,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멕시코나 체코, 에스토니아가 되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민중으로서도 한국 피지배자로서도 이와 같은 ‘새끼 제국주의’를 배격해서 평등하고 민중 본위, 북한 주민 등 약자 본위의 통일을 이루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다. 한국 자본에 의한 북한의 신식민화는 그 모든 피해자들에게 대박이 아닌 고통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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