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역시 한국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해!”
소치 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이런 감탄사가 튀어나오고 있다. 역대 올림픽 메달 수를 남녀별로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이미 통념으로 굳어진 듯하다. 스포츠 분야만이 아니다. 아들딸을 함께 키우는 부모라면 열에 일고여덟은 고개를 끄덕일 말이다. 막연히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면서 생긴 현상일 거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 귀퉁이 짧은 기사를 보면서 진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과감한’ 상상을 하게 됐다. 기사는 제주도와 서울대가 공동으로 해녀를 연구한다는 내용이다.
얼음 같은 겨울 바다를 홑옷만 입고 뛰어드는 인간 종족은 지구상에 우리나라 해녀밖에 없다. 제주 해녀는 추울 때 기초대사량이 35% 정도 늘어난다. 몸을 떨지 않고도 근육에서 자체적으로 열을 만들어낸다. 몸 표면의 열전도율도 낮다. 후천적으로 얻은 체질이라기보다는 유전적으로 획득한 형질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먼 옛날 돌연변이로 인해 겨울 바다에 유독 강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고 치자. 해녀로 자라 더 깊고 더 오래 바다를 누비며 소라 전복을 많이 땄을 것이다. 수확이 좋으니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우고 면역력도 키워 남들보다 더 많은 후손을 남긴다. 물론 추위를 덜 타는 유전자는 계속 자손에게 이어진다. 이런 대물림이 오래 이어지다 보니 제주 해녀는 모두 겨울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허황된 공상만이 아니다. 중세 잉글랜드에서는 최고 부자들이 극빈자들보다 두 배나 많은 자식을 길러냈다. 그 결과 1000년쯤 흐른 뒤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부유층의 후손이 됐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이 가설을 제주도를 넘어 한반도 전체로 확대해 보자. 우리는 역사에 기록된 것만 1000번 가까운 외침을 받은 민족이다. 특히 지난 500년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36년, 6·25 등 시련과 고난으로 점철됐다. 지지리 못난 남자들이 전쟁에서 질 때마다, 자식들 먹이고 입히는 건 어머니의 몫이었다. 살아남은 건 억척어멈의 자식들인 것이다. 그 강인한 유전자가 우리 누이와 딸들의 핏줄 속에 계속 흐르고 있을 것이다.
물론 흠이 많은 이론이다. 남녀의 유전적 구성은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여성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라면 남성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예외도 있다. 같은 유전이더라도 여자는 우울증에 잘 걸리고, 남자는 강박증에 더 잘 걸린다고 한다. 성호르몬의 차이로 유전자 스위치가 여자에게서만 켜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기껏 500~1000년으로 진화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반박도 가능하다. 하지만 티베트 사람을 보자. 이들은 고산병에 걸리지 않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고작 1000년 전 생긴 뒤 퍼져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한 유전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유대인의 우수성은 진화론으로 해명하려는 시도들이 제법 있다. 기독교가 고리대금업을 금지한 탓에 유대인이 맡게 됐고, 금융업이 지능을 요구하는 일이기에 머리 좋은 유대인만 부유해지고 자식을 많이 낳게 됐다. 이게 몇백년 동안 반복되면서 유대인의 지능지수가 유럽 평균보다 의미있는 차이로 높아졌다는 이론이다.(<1만년의 폭발>) 한국 여성에 대해서도 진화론이든 인류학이든 뭐든 학문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여성들이 지닌 저력을 찾아내고 격려해주면서 사회 곳곳으로 뻗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일 말이다.
그나저나 오늘 밤 김연아의 명품 점프를 감상하면서, 자식을 품은 채 적군을 피해 뛰고 내달렸던 조선의 어머니를 떠올려보는 것도 또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김의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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