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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근혜, 배신과 탈당 / 박찬수

등록 2015-07-14 18:47수정 2015-07-14 18:48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인 대통령직선제는 몇 가지 한국적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대통령의 탈당이다. 차기 대선이 가까워지면 거의 모든 대통령이 집권당을 떠난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여당에서 대통령 탈당을 원한다는 점이다. 차기 대선 또는 총선이 가까워져 올수록 여당 의원들은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는 대통령을 멀리하려 한다. 그래서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대통령 탈당을 요구한다. 둘째는, 대통령 스스로의 선택이다. 대통령이 되면 누구나 여당 지지율보다 자신의 레거시(업적)를 먼저 생각한다. 야당 공세에서 벗어나 남은 임기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데 탈당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면, 굳이 당적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대개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대통령에 따라 무게중심은 다르다. 노태우·김영삼·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은 전자의 측면이 강했다. 여당 의원들 또는 여당 대선 후보와의 갈등이 도화선이 됐다. 심지어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이 탈당하자, 당시 여당 후보였던 김영삼 대통령은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탈당했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후자를 좀 더 고려했다. 두 아들의 구속과 측근 비리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여당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탈당을 택했다.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동교동계를 통한 당 지휘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마당에 굳이 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탈당해서 정치적 논란을 벗어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임기의 반환점을 눈앞에 둔 박근혜 대통령에게 탈당을 얘기하는 건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러나 이걸 현실적인 이슈로 밀어올린 건 대통령 자신이다. 유승민 파문을 통해 확인된 건, 당이 통제를 벗어나면 대통령은 언제든 당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 어법으로 말하면, ‘배신자’와는 절대 한배를 탈 수가 없다. 대통령의 탈당은 정치적 상상력의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그런데 탈당 이유가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를 것 같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면 역대 대통령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 있다.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누구나 임기 말까지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여당과 첨예하게 대립하기보다는 차라리 탈당을 선택한다. 정치적 승리보다 국정운영의 성과를 남기고 싶은 게 대통령들의 공통된 속성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 점에서 독특하다. 업적보다 정치적 영향력을 훨씬 중요시한다. 온 나라가 메르스로 난리고 국회엔 수많은 민생법안들이 묶여 있는데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여당 원내대표와의 싸움에 올인하는 집중력과 자세는 가히 놀랍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집착이 박 대통령을 지탱하는 정치적 무기로 작용한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탈당한다면, 그건 여당 통제가 어려워진 걸 받아들이는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크다. 당에 남아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차라리 당을 나가서 내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에겐 공천에 탈락한 소수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이끌고 정국을 뒤흔든 ‘친박연대’의 경험이 있다.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박 대통령이 유난히 정치에 몰두하는 건 아마도 아버지의 아픈 경험 때문일 것이다. 1979년 10·26 이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정치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세간의 인심이 조변석개하듯, 역사적 평가도 결국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갈린다고 그는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그는 임기 중, 어쩌면 임기가 끝난 뒤에도 영향력을 내려놓지 않으려 애쓸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가장 정치적인 대통령을 마주하고 있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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