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은 얼마 전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트위터에 올려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대한 자신의 굳은 결의를 표시한 바 있다. 시계를 2012년으로 뒤돌려 놓고 보면 그때도 안 의원은 수없이 많은 갈림길을 마주했다. 그가 정치의 숲길에 들어선 뒤 만난 첫번째 큰 갈림길은 정치적 정체성 문제였던 것 같다. ‘반여비야’의 길과, 친야권 정치인이라는 두 갈래 길에서 그는 야권 합류의 길을 선택했다. 그 뒤 나타난 갈림길인 야권 후보 단일화 표지판 앞에서 그는 한참 동안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이 흐른 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선택의 순간들이었다.
안 의원이 다시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길을 걷는 모습에서는 첫번째 갈림길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한숨이 묻어난다. 그 때문인지 이번에는 ‘반여비야’가 아니라 ‘반야비여’의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프로스트의 표현대로 길이란 한번 선택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숙명을 지닌다. 이제 와서 제3의 길로 돌아가기에는 애초의 갈림길에서 너무 많이 와버린 것은 아닐까. 길에 쌓인 낙엽의 무늬는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같아 보이지만 그때 가지 않은 길과 지금 가는 길이 똑같을 수는 없다. 신당에 새누리당 의원이 한 사람도 합류하지 않은 것이나, 영남 보수층의 지지율이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이 이를 웅변한다.
안 의원은 총선 야권 후보 단일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강하게 고개를 젓는다. 과연 그 길은 후회 없는 선택이 될까. 2012년 당시를 반추해보면, 애초 문재인 후보보다 훨씬 앞서 있던 안 후보의 지지율이 점차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후보 단일화에 대한 미적지근한 태도에서 촉발된 야권 지지층의 실망감도 큰 요인이었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후보 단일화에 적극성을 보였더라면 결과는 딴판이 됐을 수 있다. 이번에도 비슷하다. 야권 성향 유권자들의 대체적인 정서는 ‘호남에서는 야당들끼리 한번 싸워 보라. 그렇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연대해서 새누리당을 꺾어달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야권 우호 세력의 신당 지지 유보 내지 철회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그런 정서를 거스르는 안 의원의 행보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안 의원의 정치적 판단과 결심에 대해 국외자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은 없다. 다만, 안 의원이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부한다면 본인부터 수도권 격전지에서 후보 단일화 없이도 승리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은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태에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과 더불어민주당의 이동학 전 혁신위원이 출사표를 던짐으로써 최대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안 의원으로서는 결코 회피할 수도 없고, 회피해서도 안 되는 싸움이다.
대선 후보의 총선 출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 불출마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영 마뜩잖다. 대선 후보가 되든 안 되든 어차피 국회의원직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문 대표의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동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용감한 행동이라기보다는 난제 회피요 책임 방기다. 미국의 에드워드 케네디는 비록 대선 후보 문턱에서 좌절했으나 상원의원으로 죽기 직전까지 각종 진보적 법안 통과에 동분서주했고 그 결과 정치적 거목으로 우뚝 섰다.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패배한 존 케리는 지금 국무장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왜 우리 대선 후보들은 그런 길을 걷지 못하는 걸까.
어쨌든 문 대표는 ‘총선 패배 시 정계은퇴’까지 말하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안 의원의 경우는 또 다르다. 격전지 총선 출마라는 뜨거운 감자를 결코 피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전국 선거운동 지원’ 등의 이유로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거나 비례대표로 선회한다면 참으로 실망스러울 것이다. 더 나아가 안 의원은 대선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여줘야 한다. 총선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반대하면서 대선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 의원은 또 한번 갈림길에 섰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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