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성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구남). 이 거나함이라니. 구남은 ‘구남 그루브’의 창시자다. ‘구남 그루브’란 무엇인가? 리더인 조웅의 말을 빌리자면, “리듬과 그루브, 톤과 앰비언트, 이야기와 멜로디의 편집으로 음악이 만들어”진다. 또한 음악에는 “믿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습관적인 것과 생경한 것이 뒤범벅”되어 있다고 한다. 2013년 10월12일부터 11월10일까지 대림미술관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가졌던 조웅의 전시 ‘보따리’에서 작가의 말을 인용했다. 바로 그 뒤범벅. 당시까지는 조웅, 임병학, 박태식, 김나언의 뒤범벅. 구남은 감정과 이야기와 분위기를 소리라는 보따리로 싸서 ‘야, 여기 있다’ 하고 전해준다. 즐거운 일과 슬픈 일, 좋은 기분과 더러운 기분, 상승과 하강, 한국말과 외국말, 과거와 현재가 순서 없이 혼재하는 상태. 이것이 구남 그루브다. 좋은 멜로디 만드는 것도, 멋진 가사 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자기 장단을 만들어 내는 건 정말 비범한 일이다. 구남은 느릿느릿 유장한 우리 속도를 우리에게는 어색한 장르였던 ‘록 음악’에 접목시키는 법을 찾아냈다. 그들이 우리 세대의 밴드들 중에 유일하게 그걸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남 그루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마디로, 잘 안 온다. 처음 들으면 ‘이거 뭐 대충 하는 애들이야?’ 그럴 정도로 어딘지 엉성하다. 좋은 말로 하면 거침이 없는 듯하지만 삐딱하게 보면 섬세하게 닦이지 않은 구석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까다롭다. 아이돌 음악처럼 말끔하면 차라리 쉽잖아. 사실 이 밴드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까다로운 관문이다. 처음 접한 사람은 이게 뭐지 싶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띄어쓰기도 하지 않아서 도무지 뜻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지극히 생소한 단어들의 조합이다. 더듬더듬 읽어본다. ‘구남과여’까지는 한글인 거 같고 그다음부터는 영어다. ‘구남과여’, 이 네 자는 무슨 사자성어 같기도 한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구’가 9인지, ‘옛 구(舊)’의 구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다 보면 풀리기는 풀린다. 알고 보면 ‘옛날 남자 여자가 스텔라 자동차를 타고 간다’는 뜻. 뜻을 알고 나니 빼어나게 낭만적이다! 이 이름 안에 묘한 그리움이 서려 있다. 스텔라를 타고 가는 옛날 남과 여. 나도 왠지 그런 커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경춘가도나 7번 국도 부근이라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이 커플. 구남은 이런 ‘구남과여’들이 국도를 누빌 때 몇 살이었을까? 아마도 어린 시절이었겠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 낭만을? 조금씩 신기해진다. 자기 부모세대의 낭만을 그리워하는 애들이라니. 애늙은이들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폼내도 폼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볼품없지도 않은, 약간 괜찮은 스텔라를 내세운 것에서는 이상한 고집이나 저항감마저 느껴진다. 왜 하필 스텔라냐. 프린스도 아니고 브리사도, 포니도, 에스페로도 아니고 심지어 그랜저도 아니다. 스텔라다. 그런데 구남의 음악을 들어보면 스텔라가 딱이다. 구남 그루브에는 스텔라가 제격.
이렇게 겨우 밴드 이름 통과. 기분이 과히 좋지 않다. 이름부터 사람들을 골탕먹이고 있다. 불친절하다. 들으려면 듣고 아님 말라는 식이다. 되먹지 않았다. 피해의식 같은 것도 들어 있다. 남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은근히 자폐적이다. 니네가 아무리 아는 척해도 진짜 우리를 알 수 있겠어? 어떤 배신감의 표현 같기도 하다.
이런 복잡미묘한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가 ‘한국말’일 거다. 이 노래는 2007년 11월에 발매된 구남의 1집 <우리는 깨끗하다>에 들어 있다. 앨범 제목도 참. 누가 아니랄까봐 ㅋㅋㅋ. 이 앨범은 21세기 초반에 나온 우리말 록 음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앨범의 하나로 꼽힐 만하다. 그만큼 독창적이고 대단하다. 팔세토에 전자음악에 뉴웨이브에 뽕짝에 동요에 낭송에 국악장단까지! 이 다양한 떡고물들이 따로 놀지 않고 쫀득쫀득, 야무지게 맛있다. 유기농 쌀맛이다. 그걸 소리의 보따리에 엉성한 척하면서, 약간은 충청도 식으로 싸서 담았다.
이 구수한 느낌. 그런데 음미하면 할수록 그 맛은 쓴맛이다. 그게 구남의 묘미다. 씁쓸함을 곱씹을수록 단맛이 나고, 달콤함을 맛볼수록 거기서 쓴맛이 배어 나온다. 이게 뭘까? 이 어린 친구들은 어디서 이런 달콤쌉싸름을 가져왔을까? 젊은것들이 고생깨나 한 모양이구먼. 대답은 간단하다. 그 고생의 근거는 바로 ‘남한 살이’다. 남한에서 살다보면 이렇게 된다. 남한에서의 삶의 진국. 그게 바로 이거다.
한국말을 할 줄 아네 나
한국말을 하고 있네
그렇다. 이 자기인식은 뼈아프기까지 하다. 비밀 중의 하나다. 가요 백년사에서 이런 인식을 대놓고 내뱉은 것은 신중현과 ‘엽전들’이 처음이었고(엽전에 담긴 자기비하), 그다음엔 구남이다. 그래. 나 한국말 좀 한다. 근데. 그게 뭐. 누가 알아주기나 해? 신입사원 면접에서 ‘저는 한국말을 잘합니다’라고 말하는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영어를 잘하면 존잘님이 되지만 한국말 잘해봐야 힘만 빠진다. 사기꾼 같은 정치가들이 한국말은 제일 잘한다.
왜 이렇게 됐나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해
그러게. 왜 이렇게 됐지. 어쩌면 일본놈들이 북한산에 박아놓고 갔다던 그 쇠봉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통일도 못한 나라, 민족끼리 으르렁대고 서로 못되게 구는 나라. 그게 얼마나 창피한 건지도 모르는 나라. 청년들의 좌절감 하나 보듬어주지 못하는 헬… 이런 말은 이제 꺼내기조차 지긋지긋. 그러나 포기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 차라리, 그냥 이렇게 결론낸다.
약간은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이 ‘어색함’, 이 ‘거리감’이 유일무이한 출구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지랄하고 자빠졌네. 나는 오늘도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창피함을 무릅쓰기 위해 이렇게 스스로 속삭인다.
나는 내가 어색하다.
그런 다음,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우리는 오늘도 ‘춤을 추고 땀을 흘리’느라 정신이 없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한국말 조웅 작사·곡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노래
나에겐 이런 표정 어울리나요
약간은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숨을 쉬고 노래하다가도 문득 나
왜 이렇게 됐나 왜 이렇게 됐나 생각해
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
춤을 추고 땀을 흘리다가도
왜 이러고 있나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해
눈을 보며 말을 하다가도 새삼 나
말을 할 줄 아네 무슨 말을 하나
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
나에겐 이런 표정 어울리나요
약간은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숨을 쉬고 노래하다가도 문득 나
왜 이렇게 됐나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해
눈을 보며 말을 하다가도 새삼 나
말을 할 줄 아네 무슨 말을 하나
한국말을 할 줄 아네 나
한국말을 하고 있네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
나냐너녀노뇨누뉴느니
라랴러려로료루류르리
파퍄퍼펴포표푸퓨프피
하햐허혀호효후휴흐히
나에겐 이런 표정 어울리나요
약간은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성기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