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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에는 없는 내 세상

등록 2016-08-19 19:13수정 2016-08-19 19:41

[토요판]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암흑의 시대와 ‘꿈’
그것만이 내 세상 작사·곡 최성원 노래 전인권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 또한 너에게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그렇게 그 길에 남았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 들국화 1집에 실려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것만이 내 세상’은 세상을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우리들만의 세상, 그러나 세상을 아는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세상을 토해내듯 노래했다.

C라는 선배가 있었다. 나와는 스쿨 밴드를 함께 했었다. 그때 우리는 스쿨 밴드를 드러내놓고 하지 못했다. 그럴 만한 시기가 아니었다. 그는 신문사 문화부 기자를 하다가 외환위기 때 그만두고 지금은 미국에 가 있다. 그는 내가 속했던 문학 동아리의 선배이기도 했다. 그날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와서 토론하는 날이었다. 토마스 만을 닮은 그 문체는 칭칭 감듯 어떤 성채의 건축을 향해 나아갔다. 이 속 깊은 소설을 대학교 1학년의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착잡했다. 학교 앞 카페에 모여 토론을 준비하고 있을 때 C형이 나타났다.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물컵을 바라보며 대뜸 이야기를 꺼냈다.

“왜 어떤 사람은 ‘당신들의 천국’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노래할까?”

이 질문은 번개처럼 내 뇌를 때렸다. 나는 순간 깨어났다. 이 말은 바로 나의 화두가 되었다. 책 속에 들어 있는 글자들과 공기를 떠다니는 소리를 연결시킨 그 발상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소설의 세계와 일상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왔다. 이것이 비평이다. 내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순간이었다. 과연 그랬다. 그 십여년 전, 이청준 작가는 ‘당신들의 천국’을 고발했고, 이제 우리는 ‘그것만이 내 세상’인 어떤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려 한다. 나의 이런 흥분된 의아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들국화의 노래는 담담하게 흐르다 끝이 났고 토론은 시작됐다. 그러나 C형의 한마디로 이미 결론은 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어느 저녁의 스케치다. C형, 어떻게 지내요.

최성원이 만들고 들국화 1집에 실려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것만이 내 세상’은 사실 <우리 노래 전시회>에도 실려 있다. <우리 노래 전시회> 1집은 정말 엄청난 앨범이었다. 그러나 노래 자체로는 그 앨범의 버전보다 역시 들국화 1집 버전의 울림이 크다.

이 노래는 ‘그대’라고 불리는 어떤 이에게 1인칭 시점의 ‘나’라는 화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대’와 ‘나’와의 일종의 논쟁으로도 볼 수 있다. 전체는 네 부분으로 나눠진다. 먼저 그대의 진술과 그대에 관한 묘사로 이루어진 첫 여덟 마디가 곡을 연다. 이 부분은 4도의 메이저 세븐스(BbM7) 코드를 사용해서 미묘하고 담담하며 감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호함과 불확실함이 이 여덟 마디를 지배한다. ‘그대’가 누군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대는 ‘나’의 간접화법으로만 존재한다. 아마도 나를 아끼고 걱정해주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대는 여자친구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다. 어른일 수도 있고, 속칭 ‘꼰대’일 수도 있다.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처럼 그대의 존재는 넓고 모호하지만, 확실한 건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의 진술은 간단하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그대는 나에게 얘기하지’

그대는 나더러 ‘세상을 모른다’고 얘기한다. 세상은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인가? 어른들은 ‘세상’을 투명한 눈빛의 아이에게 물들인다. 그래야 ‘걱정’이 사라진다. 역설적으로 아이는 ‘걱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아이에게 걱정을 전염시키고 나서야 어른은 안심한다. 그래서 그 안심에는 ‘미안함’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는 ‘세상을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의 세상이 되어 간다. 그들은 이권의 울타리 바깥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왜 네가 사는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느냐고 다그친다.

첫번째 여덟 마디는 말하는 대목이 아니라 ‘듣는 대목’이다. 노래하지만 담담하게 듣는다. 반면 두번째 여덟 마디는 ‘그대’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첫 여덟 마디가 무기력한 느낌이었다면 두번째 여덟 마디는 결심한 듯 힘차다. 첫 파트의 미묘한 메이저 세븐스 코드는 사라지고 단순명료한 4도 화성(Bb)이 갑작스런 이야기의 반전을 표시한다. ‘그대’가 걱정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나’는 ‘그대’의 걱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대의 걱정을 뒤로하고 ‘혼자 먼 길을 떠난다’. ‘나’는 그대의 세상을 거부한다. 이 대목은 그다음 세번째 여덟 마디의 비장함을 준비하고 있다.

세번째 여덟 마디에서 들국화의 전인권이 진가를 발휘한다. 리듬은 8비트에서 16비트로 바뀐다. 이전까지가 걷기였다면 슬슬 뜀박질이 시작된다. 세상을 떠난 주찬권 드러머가 그립다. 그 형님은 머리를 흔들며 이 비장하고도 가벼운 행진을 이끌곤 했다. 그는 마치 태풍 속에서 방향타를 쥐고 있는 선장과도 같이 굳건했고, 그 리듬의 지휘는 열정적이었다. 전인권은 머금고 있던 응어리를 토해낸다. 옥타브 위 근음으로 급격히 도약하며 선언한다.

‘하지만 후횐 없지 찾아 헤멘 모든 꿈’

이제 ‘나’는 나만의 세상에서 나만의 꿈을 향해 간다. 마지막 네번째 파트. 무반주로 전인권의 목소리만이 불을 뿜듯 토해내는 이 한마디는 1980년대의 암흑 속에서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안한 희망을 품고 원하는 세상을 위해 고난의 길을 갔던 모든 친구들과 더불어, 공포와 불안과 걱정과 비겁함의 아픔 속에서 술잔을 기울였던 평범한 우리 모두가 결국 하나 되어 따라 불렀던, 아래 도에서 위 시 플랫까지 튀어 오르는 바로 그 한마디다.

‘그것만이 내 세상’

성기완
성기완
여기서 일순 상징적으로 모든 ‘걱정’은 사라진다. 이것을 ‘역전’이라고 부르자. 이 사라짐의 상태를 ‘몽홀(夢惚)의 상태’라고 부르자. 노래의 어떤 순간만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로 그 세상, 세상을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우리들만의 세상, 세상을 아는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세상이다. 꿈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래서 그 ‘잘 아는’ 사람들에게 거꾸로 ‘너는 세상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들국화의 노래는 승리의 진술이 아니라 사실은 패배의 기록이었다. ‘행진’은 ‘함께 가자’는 노래라기보다는 ‘갈 길이 막혀 있음’에 대한 노래로 들렸고 ‘그것만이 내 세상’은 ‘내 세상’의 온전함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내 세상 안쪽의 상처’로 들렸다. 우리는 암울한 마음을 뒤로하고 울며 웃으며 막걸리에 온몸이 절어서 처절하게 이 가사를 따라 불렀다. 세상에는 없지만,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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