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다시 개헌론이 떠오른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1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은 시대적 과제다. 책임 있는 대선 후보라면 먼저 개헌에 관한 입장과 역할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날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헌은 대세다”라고 말했다. 개헌론이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순간 피어올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이번엔 다를까. 올해 유난히 개헌론에 무게가 실리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대통령 직선제’는 민주화 운동의 성과물이다. 오랜 군사독재의 경험은 학계와 시민사회, 일반 국민 모두 이 제도에 정서적 친밀감을 갖게 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에서 대통령제가 지닌 일반적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후퇴하는 경험을 했다. 국회는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했고, 여론은 국정운영에 반영되질 않았다. 둘째, ‘87년 체제’ 30년이 됐으니 이제 바꿀 때가 됐다는 인식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열기 속에 ‘대통령 직선’에만 초점을 맞춘 개헌을 했으니, 이제 그동안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해 헌법 전반을 손볼 때가 됐다는 논리다. 학계와 시민사회 진영에서 이런 주장을 편다. 셋째로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영남을 기반으로 한 새누리당엔 2007년의 이명박, 2012년의 박근혜처럼 확고한 대통령 후보가 아직 없다. 호남 역시 1997년 김대중, 2007년 정동영 이후 유력한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중진 의원들은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연립정권 수립이 가능한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내심 바란다. 그러나 개헌론의 논리는 역으로 개헌이 불가능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중진 의원들의 이해는 대체로 일치하지만 정작 차기 대선의 유력 주자들은 개헌에 적극적이지 않다. 야당에선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 모두 개헌에 부정적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선호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개헌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대통령제 고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유권자들을 만나보니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개헌 논의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소극적이니 개헌론이 힘을 받을 수가 없다. 헌법 개정이 권력구조 개편에 한정될 수 없다는 점도 개헌을 어렵게 한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단임제 하나만 고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지만 실패했다. 올해 개헌론은 87년 체제 극복이란 차원에서 제기된다. 원포인트가 아니라 헌법의 모든 조항을 살펴야 한다. 공무원의 노동삼권을 제한한 헌법 33조 2항을 삭제하자고 하면 보수층이 동의할까? 현실을 반영해 영토 조항을 삭제 또는 개정하는 건 어떨까?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 말대로 헌법 전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는 표현을 삭제하자고 한다면? 강력한 국민 지지를 등에 업지 않고는 이런 논란과 쟁점을 뛰어넘기 어렵다. 1987년 개헌을 가능하게 한 건 바로 6월 항쟁의 뜨거운 열기였다. 지금은 그런 국민적 열망을 찾기 힘들다. 개헌론은 국민 요구가 아니라 정치권 욕구에 의해 분출한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대선 주자에게 개헌에 관한 입장을 물을 게 아니라, 국민에게 ‘과연 지금 개헌이 필요한가’를 물어야 한다.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제어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현행 헌법과 법률로도 충분히 폭주하는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데 왜 못하는지 돌아보길 권한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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