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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케네디의 ‘13일’과 박근혜 / 박찬수

등록 2016-10-18 17:12수정 2016-10-18 18:58

박찬수
논설위원

54년 전 일이지만 미국 유투(U2)기가 쿠바의 소련제 중거리탄도미사일 기지를 포착하면서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여전히 교훈적이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이 사실을 보고받은 날(1962년 10월16일)로부터 위기가 해소되는 10월28일까지 13일간 인류는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여기서 소련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해상봉쇄를 밀어붙인 대통령의 ‘용기’만 읽는 건 피상적이다. 진정한 용기란 숱한 강경론 속에서 유연한 사고를 잃지 않는 점이란 걸 케네디는 보여준다.

케네디는 무슨 이유에선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를 몰래 녹음했다. 역사학자 셸던 스턴이 쓴 <존 에프 케네디의 13일>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지도자는 어떤 고민을 하고, 참모들에게 무엇을 묻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회의에선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소련 의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그때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말한다. “소련이 미국 핵미사일의 공포 아래 사는 것에 비하면 미국이 소련 핵미사일에 느끼는 공포는 크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터키를 비롯해 소련과 인접한 몇몇 국가에 핵무기를 배치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2016년의 한반도를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대통령과 군부는 금세 북한이 남한에 핵 공격이라도 가할 것처럼 흥분한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핵미사일 공포 아래 사는 거에 비하면 우리가 북한 핵미사일에 느끼는 공포는 크지 않다”는 게 오히려 현실에 가깝다. 북핵 위험을 과소평가하자는 게 아니다. 상황을 냉철하게 보고 상대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 위기 해결엔 필수적이다.

13일간 거의 매일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는 케네디에게서 가장 인상적인 건 불굴의 용기도, 흔들림 없는 신념도, 두둑한 배짱도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피해야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노력이다. 회의 때마다 군부는 미사일 기지 공습이나 쿠바 전면침공과 같은 강경론을 쏟아냈다. 케네디는 해상봉쇄를 원했다. 그는 10월18일 밤 혼자 녹음기를 켜놓고 “(전쟁을 막고자 하는 마음이) 아주 간절하다”고 토로했다.

그런 케네디를 군 장성들은 ‘겁쟁이’라고 비난했다. 10월19일 회의에서 커티스 러메이 공군 참모총장은 “(공습이 아닌) 봉쇄는 뮌헨 유화정책만큼이나 잘못입니다”라고 말했다. 1938년 뮌헨회담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피하려 히틀러의 체코 병합을 눈감아줌으로써 더 큰 불행(2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걸 거론한 것이다. 대통령에겐 치욕적인 비유였다. 데이비드 슈프 해병대 사령관은 “침공해야 합니다”라며 책상을 꽝 내리쳤다. 케네디는 “해상봉쇄의 이점은 (소련과의) 핵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겁니다”라고 반박했다.

위기의 결말을, 우리는 다 안다. 핵 부품을 실은 소련 선박은 미국 군함과 충돌 직전에 뱃머리를 돌렸고, 그 대가로 미국은 몇달 뒤 터키에서 핵미사일을 철수했다. 미국과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소련은 28년 뒤인 1990년 붕괴했다. 쿠바는 2014년 미국과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를 이뤘다. 케네디가 보면 긴 세월이 흐른 뒤의 해피엔딩이다.

요즘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통령 주재 안보회의 풍경이 문득 궁금해진다. 나중에 그 회의록이 공개되면, 그래서 대통령과 참모·장관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가장 강경한 건 대통령이고 누구도 여기에 이견을 달지 못하는 분위기일 것 같긴 하다. 어쩌면 그런 회의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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