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별곡(靑山別曲) 작자·연대 미상
<상략>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쁠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
사사미 짐ㅅ대예 올아셔
해금을 혀거를 드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니 배브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로기 매와 잡사와니
내 엇디 하리잇고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을 소리의 차원에서 잘 뜯어보면, 노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음소가 발견된다. 한눈에 봐도 그것은 ‘ㄹ’이다. 리을은 사랑의 음소다. ‘영원한 여성성’의 음소적 발현이다.
목소리를 보다 오래 저장하기 위해 문자가 태어났다. 문자는 간단한 의성어로 소리를 보관하기도 하고 보다 긴 문자적 재현으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모든 시는 저장된 목소리다. 다시 말해 ‘녹음’이라는 것이다. 에디슨이 녹음기를 발명한 이래로 소리는 녹음기에 기록되지만, 그 이전까지 모든 소리는 문자로 녹음되었다. 그래서 인류의 책꽂이에 저장된 문자를 해독하는 모든 행위는 ‘소리의 고고학’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소리의 고고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인문학을 진지하게 연구할 때가 올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한 번 진동한 파장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이퀼리브리움(equilibrium), 즉 평형상태에 도달하면 파장은 잦아든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0의 이퀼리브리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소멸됐다고 가정할 뿐이다. 한 번 울린 소리 역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파장은 진행하므로) 우주의 어느 끝에는 아직도 수백년 전 어떤 사람들의 연주로 지구상에 존재했다가 연기처럼 사라졌을 소리의 파장이 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파장을 붙들어 증폭시켜서 재현하는 기술이 미래에 개발될 수도 있다.
얄리얄리얄라셩얄라리얄라
‘청산별곡’에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후렴구는 참으로 아름다운 소리 보관의 사례 중 하나다. 녹음기가 있다면 녹음했겠지만, 글자가 있으니 적어두는 수밖에 없었겠지. 그런데 참 잘도 적었다. 이 글자들이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 있을까. 혀를 굴려서 소리를 내 봐도, 그냥 맨눈으로 글자를 쳐다만 봐도 너무너무 예쁘다. 예뻐 죽겠다. 청산별곡의 이 신비스러운 후렴구에 빠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아무리 바라봐도 어여쁜 문자들이 두둥실 떠 있는 언어의 호수에서 뜻은 솟아오르지 않는다. 대신 모호함의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우주 저 끝으로 사라졌을, 그러나 수백년 전의 그 순간에는 진짜로 울려 퍼졌을 음파의 붙들 수 없는 옷자락이 환청인 듯 귓전을 스쳐가는 것을 느낀다. 그럴수록 뚫어지게 이 글자들을 바라보며 밤이 깊어갔다. 마치 사라진 민족의 민요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평범한 산책로에서 갑자기 마주친 오래된 유적 앞에 선 듯, 가슴이 떨리고 심장이 진동했다. 나는 홀려버렸다. 그때는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청산별곡 안에 빠져들어 갔다. 보면 볼수록 홀리고 또 홀려 그 리듬 안으로 말려들어 갔다. 빙글빙글 돌며 내 존재의 먼 고향을 환기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언어의 리듬이 주는 아름다움을 처음 발견하던 순간이었다.
이 후렴구는 ‘왓뚜와리와리’ 같은 여흥구 노릇을 하기도 하지만 피리 소리를 문자로 저장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악기인지 정확히 알긴 힘들지만 소리의 느낌이 피리 부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청산별곡이라는 노래의 가사 사이사이에 피리 반주가 있었다는 짐작을 해볼 수 있다. 피리가 아니더라도, 가사 부분과 악기의 간주가 서로 ‘메기고 받는’ 콜 앤드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 형식의 노래를 문자로 재현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처럼 ‘보관된 소리’인 청산별곡을 소리의 차원에서 잘 뜯어보면, 노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음소가 발견된다. 한눈에 봐도 그것은 ‘ㄹ’이다. 나는 한동안 리을에 미쳐 있었다. 그래서 <ㄹ>이라는 시집도 낸 적이 있다(2012, 민음사).
우리말 자모 ‘ㄹ’. 볼수록 오묘한 글자다. 위는 왼편이 터졌고 아래는 오른편이 터졌다. 오른쪽으로 가다가 꺾여 내려와 다시 왼편으로 가다가 꺾여 또 타고 내려와 끝내 오른편으로 가는 글자. 왼쪽이 오른쪽에, 오른쪽이 왼쪽에 열려 다가가 있는 글자다. 이 각진 리을을 둥그렇게 깎아보자. 그러면 태극이다. 그냥 일직선이 아니라 당신 쪽으로 저만큼 들어가 있고 내 쪽으로 이만큼 밀려와 있는 태극의 리을은 역동적이다. 빙글빙글 꼬인 스프링이 도약의 발판이듯, 리을도 도약의 발판이다. 리을을 태극으로 형상화한 것을 보면 참 한글은 속 깊게도 만들어졌다.
리을은 사랑의 음소다. 리을의 지배는 보편적이다. 우리말뿐 아니라 그 어떤 나라의 말로 된 시를 보아도 리을이 언어적 회전의 중심에 있다. 모든 말은 리을을 모신다. 아, 리을을 사랑해. ‘사랑하다’라는 단어에도 리을이 있다. 이응도 예쁘고 앙증맞고 동그랗고 우물처럼 파여 나를 빤히 쳐다보는 발음이긴 하지만 내 취향에는 단연 리을이 더 아름답다. 리을은 감싼다. 순환한다. 혀를 돌려야 리을이 된다. 리을은 아무것도 찌르지 않고 아무것도 붙들지 않는다. 리을은 시냇물처럼 졸졸졸 흐른다. 프랑스어의 사랑 ‘아무르’, 이탈리아어의 사랑 ‘아모레’, 영어의 사랑 ‘러브’. 리을은 사랑의 발음. 사랑해 사랑해 테키에로 아모레 미오 아이러브유. 연인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리을을 발음하고, 키스할 때 혀를 돌돌 말아 겹리을을 만든다.
물론 리을의 향연에 리을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면 심심하지. 리을 언니의 주변엔 언제나 사내들이 많다.
살어리살어리랏-다
‘랏!’에서 끊긴다. 살어리살어리 하며 살살 올라가다가 펄쩍 뛰어내린다. ‘살어리살어리’ 두 번 반복되며 유장하게 휘감은 춤사위가 ‘랏’에서 딱! 절도 있게 한 번 끊기면서, 때리는 음인 ‘다’로 넘어간다. 돌고 돌다가 탁! 끊고 쿵 때리며 정신 나게 하고 다시 돌아간다. 기본은 돌아가야 하는 것. 돌지 않으면, 계속 반복하지 않으면 노래는 없다. 그러나 무조건 돌기만 하면 어지럽고 구역질 나고 퇴폐스럽다. 컷! 치고 빠져줘야 하고 맺고 다시 감아야 한다. 가다 서고 돌다 멈추고 다시 돌고 돌아 1연, 2연, 얄리얄리 후렴구로 갔다가 다시 나와 돌고 돈다. 나왔다가 들어오고 돌다가 멈춰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야 올라가기 때문이다. 가마꾼들, 올라가기 힘들지. 상여꾼들 혼백을 하늘나라 보내기 힘들지. 그래서 노래한다. 리을은 평지를 빙글빙글 도는 것이 아니라 약간 경사진 언덕배기를 올라가는 노래의 수레에 달린 바퀴다.
그래. 리을은 괴테가 파우스트의 맨 끝줄에서 말한 ‘영원한 여성성’의 음소적 발현이다. 리을은 바퀴다. 리을은 말을 실어 시가 사는 곳으로 날라주는 예쁜 자동차다.
성기완 시인·뮤지션·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