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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트럼프, 위기와 기회 / 김연철

등록 2016-11-13 17:26수정 2016-11-13 18:57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이기적인 지도자는 외교를 못한다. 외교는 상호관계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지도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이 아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외교를 잘하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입이 아니라 귀다. 공무원과 야당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귀를 열지 않는 지도자는 재앙을 부른다. 박근혜를 겪어본 우리는 안다. 대통령의 소통능력이 외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박근혜의 현실이 트럼프의 미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불확실성의 안개가 몰려온다.

트럼프를 레이건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거구호도 비슷하고, 감세정책을 비롯한 주요 정책도 닮았다. 외교는 어떨까? 레이건은 외교를 몰랐다. 정상회담을 하면서 엉뚱한 주장을 하거나, 자신이 출연한 영화와 현실을 착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레이건의 장점도 분명했다. 그는 외교를 몰랐기 때문에 관료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리고 레이건은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조지 슐츠를 국무장관에 임명하고 상당한 권한을 줬다. 레이건 팀은 고르바초프와 손을 잡고 냉전 해체의 문을 열었다.

트럼프는 레이건과 달리 행정 경험이 없다. 선거 자체를 공화당의 도움 없이 치렀기 때문에 당의 인적 자원을 얼마나 활용할지도 알 수 없다. 현재 거론되는 국무장관 후보들은 외교 경험이 없거나 편견을 가진 인물들이다. 트럼프의 외교는 예측이 어렵다. 외교 공약의 일관성도 없다. 선거기간 동안 쏟아낸 말이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외교’는 당분간 좌충우돌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가능할까? 트럼프는 선거기간에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식적이고 지나가는 말이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한번 만나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선다. 불신이 깊을수록 넘어야 할 산은 높다. 협상의 능력은 언제나 잘 풀리지 않을 때 드러난다. 오해가 생기거나 자신이 양보해야 할 때, 협상의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면 불신의 계곡을 넘기 어렵다. 부시 행정부는 집권한 지 6년이 지나서야 협상의 지혜를 깨달았다. 트럼프 정부엔 그 정도의 실력이라도 기대하기 어렵다.

박근혜와 트럼프의 만남은 어떨까? 트럼프의 미국은 통상 분야에서 한국의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한국 경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안보 분야의 비용분담도 더 많이 요구하고, 미국산 무기를 더 많이 팔려고 할 것이다. 한-중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하겠지만, 요구를 들어줘도 관계가 좋아지기 어렵다. 물론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국내의 정치적 기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미 관계는 삐걱대면서도 군비경쟁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주체가 없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재앙’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은 분명히 한반도 질서를 재조정하는 계기다. 언제나 위기는 기회다. 미국이 국내문제에 집중하면, 동북아시아의 상대적 자율성이 생긴다. 당연히 한국 정부가 기회를 포착해서 변화된 정세를 활용할 때다. 냉전 해체라는 어수선한 환경에서 북방정책을 추진했던 노태우 정부처럼 말이다. 박근혜 정부? 전략도 없고 실력도 없는데, 이제는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기회를 살리려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정부가 등장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몰려올 때는 가능한 수준에서 시야를 확보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트럼프의 등장은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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