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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다수파 진보정권의 탄생 / 박찬수

등록 2017-01-10 18:16수정 2017-01-10 18:54

박찬수
논설위원

헌법재판소의 탄핵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조기 대선의 막은 이미 올랐다. 헌재는 탄핵 재판의 속도를 내고 있다. 촛불 공격에만 매달리는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들은 법리적 방어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 궐위 60일 이내 수요일에 보궐선거를 한다는 규정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선거일도 얼추 예상해볼 수 있다. 지금 분위기론 꽃피는 봄날의 선거가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새해 초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실시한 대선 여론조사의 핵심은 하나다. 대세론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상승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표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비판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이 추세를 뒤집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럴수록 연대의 중요성은 커진다. 민심이 야권의 분열과 오만에 등을 돌리는 데엔 한 달이면 충분하다. 연합과 연대는 ‘대선 이후’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박근혜 퇴진’ 깃발 아래 모인 지지층은 선거 이후엔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 보수 진영은 공세를 재개할 것이고, 진보 쪽에선 개혁이 미흡하다는 불만이 표출될 수 있다. 반동을 뛰어넘어 촛불의 요구인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를 위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광범위한 지지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 다양한 정치세력을 끌어안는 노력이 문 전 대표에게 필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최근 그의 발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모두 민주정부 후예다. 대선 과정에서 힘을 모으길 간절히 바란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 말이 정치적 수사로 그쳐선 안 된다. 누가 뭐래도 문 전 대표는 야권의 가장 유력한 주자다. 그런 만큼 훨씬 담대하게 비판과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이번 대선을 ‘정권교체를 위한, 문재인과 안철수의 싸움’이라고 주장한 건 시의적절하다. 국민의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제3지대론’ 또는 ‘빅텐트론’에 분명히 선을 긋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어디서 정치를 시작하든 그가 ‘여권 후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친이명박 인사는 물론이고 극소수의 ‘골수 친박’을 제외한 새누리당 인사들까지 결국 반기문 우산 아래 집결할 게 분명하다. 촛불집회 이후 ‘진보 대통령’을 바라는 국민이 60%를 넘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또는 그 후계 세력과 손잡고 정권을 추구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안철수가 야권 토양에서 문재인과 겨루겠다는 건, 쉽진 않겠지만 현명한 선택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진보 진영은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어 집권한 적이 한 번도 없다. 1997년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씨와 디제이피(DJP) 연대를 했음에도 40.3%의 득표율로 겨우 승리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은 48.9%의 지지를 얻어 과반에 근접했다.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수파 진보정권’은 집권 이후에도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진보(또는 민주개혁) 정권이 출범할 수 있었던 기회는 6월항쟁 직후인 1987년뿐이었다. 군부 출신의 노태우 민정당 후보(36.6%)가 승리한 그해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후보의 지지율 합계는 55.1%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올해 대선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진보 진영이 자력으로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어 개혁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공동정부든 연립정부든 또는 섀도 캐비닛이든, 진보·시민세력이 대선 과정부터 함께할 수 있는 틀을 짜려는 고민과 노력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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