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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가고이케라는 괴물은 누가 낳았나? / 길윤형

등록 2017-03-02 18:28수정 2017-03-02 20:57

길윤형
도쿄 특파원

그동안 일본에 머무르면서 여러 좌절과 무력감을 느껴왔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요 며칠 사이가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도 관련 보도로 어느 정도 알려진 오사카의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때문이다.

이 스캔들의 내용 자체는 매우 간단하다. 오사카부에 위치한 모리토모학원이라는 학교법인이 그동안 운영하던 쓰카모토 유치원에 이어 새로운 초등학교를 설립하려 했다. 문제는 부지였다. 이 학원은 국유지인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에 있는 땅(8770㎡)을 정부 감정가(9억5600만엔)의 14%에 불과한 1억3400만엔에 사들이는 ‘기적’을 일으킨다. 땅 지하에 콘크리트나 폐자재 등 쓰레기들이 묻혀 있어 이를 제거하려면 큰 비용이 든다는 이유였다.

이 문제가 왜 일본 정국을 뒤흔드는 거대한 스캔들로 확장됐을까. 여기부터가 흥미로운 얘기다.

“전후 일본을 적으로 보는 점령군이 만든 틀에 지금까지도 속박돼 있다. 이 ‘전후 레짐’으로부터 탈각하지 않으면 진정한 일본의 모습, 즉 아름다운 일본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내 진심이었고, (1차) 아베 내각의 사명이었다.”

“맥아더의 전후 교육이 시작돼 그 여운이 지금도 쭉 남아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고 이것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중략) 결국 그래서 도달한 것이 교육칙어였다.”

두 개의 인용구 가운데 앞의 발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09년 2월 <세이론>(正論)이라는 우익 잡지와의 대담에서 밝힌 교육 철학이다. 현재 일본의 어린이들이 국가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은 더글러스 맥아더의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전후 일본에서 시행한 교육정책 때문이고, 이 속박에서 벗어나야만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국위를 떨쳤던 메이지 시대의 일본 같은 아름다운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번 스캔들의 주인공인 가고이케 야스노리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이 한 우익단체와 진행한 인터뷰다. 두 사람 모두 일본 교육의 실패 원인을 연합군이 일본에 ‘강요’한 점령정책에서 찾는 등 기본적인 교육관이 완전히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랬기에 가고이케 이사장은 4월에 개교할 예정인 초등학교의 기금을 모으는 입금 용지에 이 학교를 ‘아베 신조 기념 초등학교’로 소개하거나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를 새 학교의 명예교장으로 초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베 총리의 교육관이 일본 사회에 조금씩 침투하면서 실제 벌어진 일은 제정신을 가진 이라면 모두가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처참한 교육의 파괴였다.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게 지난달 27일 일본 언론들을 통해 공개된 쓰카모토 유치원의 2015년 10월 가을 운동회 동영상이었다.

이 동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꼬물거리는 혀 짧은 목소리로 “아베 총리 힘내라” “한국과 중국은 교과서에서 거짓말을 가르치지 말라” “안보법제 국회 통과는 잘된 일이다”라고 외친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는 2015년 9월 이 학원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이 유치원에서 하고 있는 것(교육)은 정말로 훌륭하다. 모처럼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심지가 생겼지만, (보통의 공립) 학교에 가면 (애써 받은 교육이) 흔들리고 만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교육 철학을 통해 일본을 다시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려 했지만, 정작 등장한 것은 아이들에게 옛 군국주의 교육의 상징인 ‘교육칙어’를 암송하게 하고, 장난감 칼을 들린 뒤 “조슈의 무사들이여, 지금부터 막부를 쓰러뜨리자”고 외치는 가고이케라는 괴물이었다.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한국인 입장에서 뭐라 할 말도 없지만, 한국도 일본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 편견과 차별 의식을 가르쳐선 안 된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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