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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소방관 처벌? 지휘 문제 / 오윤주

등록 2018-03-06 18:16수정 2018-03-06 19:11

오윤주
충청강원팀 기자

‘제일 먼저 들어가서 맨 나중에 나온다’

진화·구조·구급에 출동한 소방관들의 태도를 압축한 말이다. ‘골든타임’이란 말을 애써 동원할 필요도 없이 최단시간에 출동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는 소방관의 행동 수칙이다.

공직 사회에서 소방관만큼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이들이 또 있을까? 공무원 하면 ‘권력’, ‘권위’, ‘갑질’, ‘철밥통’이 떠올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도 소방관이라면 ‘엄지척’이 자연스럽다. 그만큼 그들의 희생·봉사를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21일 오후 29명이 숨진 제천 화재 참사 때 현장을 지휘한 소방서장 등의 사법처리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충북경찰청 수사본부가 소방당국을 압수수색하고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서장, 지휘조사팀장 등을 불구속으로 입건하자 처벌에 반대하는 여론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소방관을 처벌하지 말라는 청원이 40여건 올라 있다. 처벌 청원도 10여건 있지만 인원수에서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다. 열악한 인력·장비 여건 속에서도 엄청난 화마를 상대하며 최선을 다했는데 처벌은 지나치다는 것이 청원의 대세다. 지난 1월17일~2월16일 진행한 ‘제천 화재 관련 소방공무원 사법처리 반대’ 청원은 5만3905명이 동의했다. 20만명에 미달해 청와대의 답을 얻을 순 없지만 최다 공감을 끌어냈다. 이 청원을 보면, “오늘 하루도 전국 4만4000여명 소방공무원들은 121건의 화재를 진압하고, 1785건의 인명구조 활동을 하고, 4976명을 응급처치하면서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소방공무원이 목숨을 구한 수는 적절하지 못한 현장대응으로 희생된 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며 경찰 수사와 처벌 중단을 요구했다.

경찰 수사는 물론 직위해제·중징계 조처 등 소방당국이 내린 징계마저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이런 여론 때문이었는지 지난 5일 공무원·교수·변호사 등으로 이뤄진 충북도 소방공무원 징계위원회는 충북소방본부가 제천 화재 참사 현장대응 부실 등의 책임을 들어 징계 의결한 소방공무원 6명의 징계 의결을 유보했다.

검찰 송치를 앞두고 막바지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경찰은 소방당국 처벌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애먼 소방관을 처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수사·처벌 대상은 현장 판단·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아 많은 희생을 낳은 지휘관과 그들의 행태다. 결과로 말하겠다”고 했다.

경찰의 수사 태도는 단호하다. 먼저 소방 지휘부가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SOP) 가운데 ‘한번 둘러봄 원칙’ 등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화재·재난 현장에 도착하면 먼저 주변을 둘러본 뒤 상황파악을 해야 하는데 구조대장은 도착 뒤 30분, 소방서장은 1시간 뒤에야 건물 뒤쪽을 둘러보는 등 구조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무전, 주변 시민의 전언 등을 통해 2층에 요구조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건물 주출입구 쪽 유리창은 화재 진화 뒤에도 연소 흔적이 없었는데도 ‘거센 화마’를 이유로 2층으로 제때 진입하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 없이 현장 상황 파악, 지휘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 부분은 ‘소방의 식구’랄 수 있는 소방청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와도 일치한다.

경찰 수사 책임자는 “세월호 참사 때 잘못된 지휘·판단이 엄청난 희생을 가져온다는 교훈을 얻었다. 제천 참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장에 남은 수많은 증거와 증언이 사실을 말한다”고 했다.

경찰의 수사·입건이 곧 사법처리는 아니다. 재판 결과를 봐야 한다. 좀 더 지켜보면 어떨까?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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