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논설위원
전기요금을 실질적으로 정하는 주체는 국가다. 전기판매사업자(한국전력공사)가 소비자와 맺는 ‘공급약관’을 통해 정하는 형식을 띠지만, 이 약관은 정부(산업통상자원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의 근거이기도 한 전기사업법(16조)에 따른 것이다. 7~8월 누진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주택용 전기료를 깎기로 7일 결정하고 발표한 주체가 한국전력이 아닌 정부·여당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주택용 누진제는 많이 알려진 대로 1973년 석유파동(오일쇼크)에서 비롯됐다. 그해 10월 터진 ‘4차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4배 가까이 올라 이듬해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를 바꿔놓았다. 누진 계단이 12개(최고-최저 차이 20배)에 이르기도 했다가 2016년 3단계(3배)로 줄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5, 2016년에 이어 올해도 요금을 깎기로 했지만, 누진 구조는 그대로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사직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폭염에 따른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주택용 누진제는 숱한 시비를 낳았다. 2014년부터 잇따라 소송에 휘말렸고, 2017년엔 누진제의 근거인 전기사업법 조항을 두고 위헌심판 제청까지 돼 있다. 누진제를 둘러싼 법적 다툼은 사업자인 한전의 승소로 이어지는 분위기였는데, 작년에 인천지방법원에서 소비자 쪽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려 눈길을 끌었다. “주택용에만 누진제를 도입해 전기 사용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판시였다. 누진제 도입 뒤 4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업·경제 구조가 많이 바뀐 현실과 무관치 않을 터였다. 전기료를 둘러싼 여건 변화의 상징은 에어컨 보급이다. 올해 못지않게 더웠던 1994년 에어컨 보급률은 9%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80%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한시적 완화로 미봉된 누진제 논란은 재발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주택용 누진제를 고치든 없애든, 이게 곧바로 전기료 경감으로 이어진다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누진제는 2단계 중간까지는 원가 아래로, 그 이상은 원가 이상으로 공급해 평균을 맞추는 구조다. 전기 절약을 유도하는 이 구조를 없앨 경우 더 오른 요금을 무는 가구가 많이 생겨날 수 있다. 더욱이 전기료를 덜어주는 게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누진제를 둘러싼 주장이나 논의는 달라진 산업·경제 구조를 반영하고, 산업용까지 아울러 전체적으로 손질하는 쪽으로 이어가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한시적으로나마 요금을 깎아주면 전기소비 증가, 전력예비율 감소로 귀결되기 쉽다. 이 경우 전력수급에 문제가 생기고, 그러니 원자력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져 에너지 정책의 큰 방향인 탈원전 흐름이 구석으로 몰리게 된다. 폭염이나 혹한으로 전기 소비가 급증하는 분위기에선 탈원전을 방어하는 논리가 약해진다.
근본적으로는 누진제 완화를 불러온 폭염 사태를 온실가스 감축 같은 환경·생태 담론으로 이어가는 동력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올해 폭염은 기후변화가 먼 곳,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실감케 했다. 혹한, 폭염, 폭우 같은 기상이변은 전지구적인 현상이 됐고, 기온의 진폭이 커지고 있다. 이는 온실가스 증가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워졌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국제 약속인 ‘파리기후변화협약’(2015년)이 미국의 탈퇴 속에서도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배경이다. 국제 분위기를 주도하진 못하더라도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환경·생태 이슈에도 비즈니스 기회는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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