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은 뒤 서명하고 손도장 찍은 조서는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다. 경찰에서 작성한 조서는 당사자가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쓸 수 없지만 검찰 조서는 다르다.
2004년 12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서명날인했더라도 법정에서 ‘진술한 것과 내용이 다르다’고 부인하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새 판례를 내놓았다. 그 전까지는 서명·날인한 사실만 인정하면 진술 내용대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해 증거로 써왔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같은해 12월31일 새 판례 취지대로 ‘공판 중심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형사소송법 증거 관련 규정들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문을 발표했다. 이어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2005년 4월25일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도 경찰 조서처럼 피고인이 법정에서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취지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후 전국의 검사들이 지검별로 비판 결의문을 내는 등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과 김승규 법무부 장관이 심야회동하는 등 절충 끝에 사개추위가 5인 소위를 꾸려 검찰 주장을 수용한 수정안을 내놓았다. 이를 토대로 2007년 6월 확정된 형소법은 조서 내용을 법정에서 피고인신문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독일 방식을 채택했다. 조서 내용을 인정하면 그 법정 진술을 활용해 증거로 쓰고, 부인하면 수사 과정을 찍은 영상 녹화물이나 수사관의 법정 증언 등 ‘객관적 방법’을 통해 증거로 쓸 수 있게 했다. 적법 절차·방식 준수나 ‘신빙할 수 있는 상태’ 등 여러 조건은 붙었으나 검찰 조서 내용을 여전히 증거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최근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린 형소법 개정안에서 피고인이 검찰 조서의 내용을 인정해야 증거로 쓸 수 있다는 조항을 다시 포함시켰다. 경찰 출신인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주장해 관철시켰다는데 경찰 조서와 비교해 검찰 조서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수사권 조정만큼 폭발성이 강한 사안이라 후속 논의가 주목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