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領袖), 옷깃과 소매를 뜻하는 한자로 남 눈에 잘 띄는 국가나 정당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데 사용한다. 정치권에선 대통령과 야당 총재의 일대일 만남을 영수회담이라 불렀다. 박정희 대통령은 난국 타개용으로 영수회담을 활용했다. 한-일 협정과 베트남전 파병이 논란이던 1965년 7월 박순천 민중당 총재를 만난 게 대표적이다. 1975년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은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김영삼이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 회복을 요구하자 박정희는 “어린 자식들만 데리고 혼자 사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냐. 직선제와 민주화를 해놓고 물러나겠다”며 “사나이 명예를 걸고 비밀로 해달라”고 했단다. 김영삼은 비밀을 지켰으나, 박정희의 약속은 결국 거짓말로 끝났다.
김대중 정부에선 8차례 야당 대표와의 단독 영수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3년 7월 한나라당이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하자 “나는 여당의 영수가 아니라 행정부 수반”이라며 “민주당과 한나라당 대표끼리 만나 회담하는 게 여야 영수회담”이라면서 거부했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고 당무는 물론 소속 의원까지 쥐락펴락하는 ‘제왕적 총재’가 사라지고, 당 대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시대변화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이후 대통령들은 여러 당 대표와 함께 보는 다자 회동을 선호했지만, 야당 대표는 단독 영수회담을 원했다. 대통령을 상대로 담판을 벌여 정치적 위상을 과시하려는 야당 대표의 요구는 집요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5년 9월 박근혜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결국 수용하는 등 두 차례 영수회담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야당 대표와 세차례 단독 영수회담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독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되레 모진 역풍을 맞았다. 추 대표는 촛불집회가 한창인 2016년 11월14일 박근혜와 영수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촛불민심 전달’이 명분이었다. 위기의 박근혜는 즉각 수용했고, 바로 다음날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당 정의당 등 다른 야당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민주당을 비난했다. 결국 야권공조 붕괴를 우려한 민주당 의원들이 밤에 의총까지 열어 영수회담을 전격 취소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이후 한동안 ‘5당 대표 회동’을 고수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참석을 거부하자 2017년 7월, 9월 두번이나 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대표만 참여한 4당 대표와의 회동을 강행했다. 2017년 12월, 홍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안보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문 대통령은 거부했다. 결국 2018년 3월7일에야 완전한 5당 대표 회동이 성사됐다. 버티던 홍준표 대표가 “안보에 제1야당 목소리를 내겠다”며 참여로 선회했다. 그리고 한달여 뒤인 2018년 4월13일, ‘문재인-홍준표 단독 회담’이 열렸다.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청와대가 요구했고, 홍 대표가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5당 대표 회동 참여의 반대급부인지 알 길이 없지만, 다른 야 3당은 당시 위기에 몰린 김기식 금감위원장을 살리려는 비밀회담이라는 등 억측을 쏟아내며 비난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 대통령을 향해 “일대일 영수회담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온갖 핑계를 대면서 거부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저와 단독 만남을 피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목청을 높인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독상’을 원하는 황 대표의 의도를 잘 알기 때문에 청와대는 5당 대표 먼저, 다음에 단독 회담을 하자는 것이다. 이번엔 어느 쪽이 더 오래 버틸까.
신승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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